한국일보

기자의 눈/ 마음은 콩밭에...

2008-11-07 (금)
크게 작게
이정은(취재1부 부장대우)

“저희는 예산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데 어쩌겠습니까?”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활동한 걸로 아는데요?”
“자원봉사자들이야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일 뿐이죠…”

미 대선이 치러졌던 4일 밤 뉴욕·뉴저지 한인밀집 지역의 출구조사 결과를 알려주겠다던 한 단체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내용이다.이날 출구조사에 나섰던 다른 한인기관의 자료를 전송받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 기관으로부터 뉴욕의 3개 투표소 자료를 겨우 받아볼 수 있었지만 뉴저지는 사정이 달랐다. 지역내 유권자 수가 몇 명인지, 이날 출구조사에 참여한 한인은 몇 명인지 도무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작정 뉴저지 한인 투표율이 56%라고만 알려왔다.


독자들이 이해할 만한 근거를 달라는 요청이 거듭되자 답변을 회피하다가는 결국 출구조사를 한 곳에서밖에 하지 못했노라고 그제야 털어놨다. 다른 한인기관만큼 예산과 인력이 충분치 않아 불가능했다며 투덜투덜 불평도 이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뉴욕·뉴저지에서 30명을 대상으로 출구조사 자원봉사자 교육까지 시켰지만 이들이 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럼 애초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원래 매번 이랬다”는 관계자의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봉사자들의 나태함을 미리 충분히 예상하고도 지난 수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 기관의 한 관계자는 요즘 심상치 않은 발언과 행보로 한인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적으로 선거로비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은근히 유권자들을 부추기는 모습에는 미주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을 위해 오랫동안 수고했던 활동들이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속내를 의심하는 한인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인들과 한국 언론에 대한 ‘해바라기’가 지나치다는 점도 비판꺼리다. 본인 스스로도 “이곳의 지역선거는 전혀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는 한국 언론과의 빡빡한 인터뷰 일정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역정치를 모르면서 어떻게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을 정도다.

물론, 생업마저 뒤로한 채 봉사하는 마음으로 급여도 없이 일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각종 난관 속에서도 영어가 불편한 한인 유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선하는데 이바지한 공로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소위 뉴욕·뉴저지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는 소위 자칭타칭 ‘정치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예산부족, 인력부족을 이유로 내세우기에는 왠지 무책임하고 초라한 변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디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애초에 이 분야에 뛰어들었던 초심을 되찾게 되길 기대해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