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세에 정체성 심어주자

2008-11-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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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훼이스 크리스찬대학 교수)

2세들의 정체성 문제는 우리 한인사회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할 과제로 남아 있다. 사회심리학이나 민족심리학, 또는 이민학 분야에서 정체성의 성격을 찾아 계발하고 나아가서 세대간 정체성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전향적 발상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일이 급선무다.우리 한민족은 훌륭한 언어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이러한 뛰어난 우리 말을 읽고, 쓰고 말하게 하려면 부모와의 일상 대화를 통해 습관화 되어야 한다.과거 한국정부에서 미국무성 초청으로 유수한 한국 대학교수들을 교환교수로 파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강의실에서 한국학생들을 소개받자 반가워서 미국생활이며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으나 눈만 멀뚱멀뚱한 채 묵묵부답이었다고. 그들은 귀국해서 매스컴을 통해 울분을 토하며 불평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 상황은 오늘날도 변하지 않고 살아있다.


가끔 이곳 전문직 사무실이나 관공부서에 가면 안내하는 비서 중에서 한국인이라 하면서 한국말을 전혀 못하거나 서툴게 더듬거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우리는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전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이나 중국인이 그들의 모국어를 잊어버려 말을 못한다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까?
한인 2세들이 한국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기존세대가 후세대에 대해 가져야 하는 문화적 윤리적인 기본 책무다.

한글학교도 있고 방과후 학교도 있고, 특별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지만 일차적으로 가정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어느 교육분야에서 보다 중요하다.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한국말로 대화하면 된다. 대화를 통해 세대간의 이견도 좁힐 수 있고 신세대의 정보도 들으면서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다용도적 도구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말을 자주 하면서도 글을 익히게 하여 책을 읽도록 하면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더 접근하여 그들의 정체성이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뛰어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특히 주옥같은 고전문학을 2세들이 알지 못하고 지나친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부모들이 방학 때면 한 두권 고전이든 현대판이든 한글책을 읽게 하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들어있는 한글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다음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확실히 알게 해야겠다. 역사는 그 민족이 성장해 온 뿌리요 전통이다. 자신의 뿌리가 묻혀있는 좌표를 정확히 알아야 자신의 정체성의 방향이 잡힐 것이다.

뉴욕에는 곳곳에 시립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의 재미있는 역사소설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어 쉽게 빌려볼 수 있으며 신간이나 따로 읽고 싶은 책은 사서에게 특별히 신청해 볼 수도 있다.2세 젊은이들이 역사 이야기의 재미에 파묻혀 독서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자연히 역사공부도 되
고 우리 말도 계속 익히게 되니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한국말을 못하면서 영어는 유창하고, 한국 역사를 모르면서 서양 역사를 줄줄이 외운다고 감히 자랑할 수 있을까?

우리 후손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뿌리를 단단히 깊이 묻어놓고 미국이라는 숲 속에 그 줄기를 키우고 가지를 폄으로써 커다란 수풀을 더욱 울창하고 아름답게 이루어 나가는데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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