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경꾼과 참가자

2008-11-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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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살해, 7명에게 부상을 입힌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흉악범 정씨는 경찰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범행 동기를 말하였다. 증오의 구체적인 대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을 적대시 하였고 자기 자신도 ‘세상’의 일원인 것을 망각하였으며, ‘세상’을 악마적인 것으로 보고 거기에 등을 돌렸다. 이런 이분법(二分法)은 의외로 많다.

많은 종교인들도 ‘마귀가 지배하는 죄 많은 세상’으로 생각하고 교회의 안과 바깥을 구별하는 이분법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스스로의 위치를 망각한 빗나간 생각이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푸트남 교수는 ‘미국의 퇴조하는 사회자본’(America’s Declining Social Capital)이란 논문에서 참가정신이 쇠퇴해가는 미국인의 최근 경향을 분석하였다.


예를 들면 교회의 출석자 감퇴, 노동조합의 약화, 학부모회(PTA) 보이스카우트 적십자사의 회원 감퇴, 주일학교 학생의 쇠퇴, 기타 많은 미국의 전통적 단체들의 회원 감소를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횡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이것을 사회자본이라고 한다. 경제 발전에 자본이 필수적인 요건인 것처럼 민주주의 발전에는 사회자본, 곧 인간들의 결속과 참가가 필수적이다. 선거는 민주 시민의 기본적인 참가 행위인데 이런 데도 불참하고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구경을 좋아한다. 운동 경기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영상문화의 대중화와 더불어 현대인은 모두가 구경꾼이 되어가고 있다. TV 비디오 CD 등은 이미 사람들을 사로잡은 구경거리이고, 불구경, 교통사고 구경, 싸움 구경까지 좋아한다. 영화도 잔인하고 죽이고 파괴적인 장면이 들어가야 인기가 있다.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고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새삼스럽다. 구경꾼이 아니라 참가자가 되라는 호소였던 것이다. 요기 베러 씨의 책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그가 양키즈 팀의 포수로 활약할 때 한 번은 상대 팀의 타자가 타석에 나와 가슴에 십자를 그었다. 가톨릭 신자인 것이다. 장난기가 많은 요기는 “자네가 믿는 하나님도 개신교도인 나의 하나님도 같은 신인데 어느 쪽도 편들기 거북할 것이니 하나님은 저 관람석에 앉아 구경이나 하시게 하세.” 그 순간 타자는 심각한 낯으로 말하더
란다. “신부님 설교에 하나님은 구경꾼이 아니라고 들었네.” 맞는 말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세상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것을 관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여 성육신(成肉身)하신 것이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그러기에 성서는 방관자와 구경꾼을 꾸짖고 선과 정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능동적인 참가정신을 고취한다.

조선 시대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는 미국인 가족들이 테니스 대회를 개최하고 조선의 고관들을 초청하였다. 땀을 뻘뻘 쏟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을 치고 있는 선교사들을 보고 고관들은 혀를 찼다. “지체 높으신 나리들께서 딱하기도 하시오. 그렇게 힘든 일은 종들에게 시키시고
구경이나 하실 일이지!” 건강과 재미를 위해서는 본인의 참가가 필수적인 스포츠의 의미를 도외시한 어리석음을 테마로 한 유머이다. 세계 인종시장 같은 미국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국민 대단합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 기적의 비밀이 곧 ‘참가 정신’에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복합인종 복합문화였지만 하나의 새로운 나라를 형성하기 위하여 모든 차이점을 극복하고 기꺼이 하나가 되는 일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를 내세우면 통일이 불가능하다. 자기를 모두에게 어울리게 하는 참가 정신이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종류의 다른 소리들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더 고차원적인 합창이 된다. 다른 색깔들이 하모니를 이룰 때 위대한 미술품이 창조된다. 여러 가지 채소가 한 사발 속에 어울려 샐러드로서 새로운 맛을 창출한다. 조지 워싱턴 다리는 높이 600피트, 길이 3,500피트의 거대한 구조인데 두 개의 기둥에 매달려 있고 네 개의 쇠줄로 지탱된다. 이 쇠줄은 27,000개의 철사를 1야드 부피로 꼰 것으로서 전부를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네 바퀴 감을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서로 강하게 뭉친 철사의 힘이 연간 1천만 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거대한 다리를 70년 동안 지탱하고 있다. 단결과 참가의 힘은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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