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보는 건국 60년

2008-10-31 (금)
크게 작게
방준재(내과의사)

지난 10월 21일자 한국일보 기사 ‘건국 60년 한강의 기적 재조명’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부제에서 ‘감동의 순간’ 150여점을 한국문화원에서 기록사진전을 개막했다고 보도하고 있다.뒤따른 기사에서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지난 60년간의 역사를 경제, 과학, 외교, 안보, 기술, 문화, 체육의 괄목할만한 성장 과정을 각 분야별로 분류한 사진전으로 보도하고 있다. 환언하면 대한민국 건국 후 지난 60년간의 시각적 역사 기록이다.
어찌보면 대한민국 건국 60년사는 내 개인의 역사와 맞먹는다. 그 역사의 흐름 속에 살아왔다는 말이다.

나는 해방동이로 1945년에 태어났다. 1945년 해방부터 1948년 대한민국 국가 건설(Nation Building) 3년간의 치열했던 좌우(左右) 이념 대결 기간을 해방 공간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얼마만큼 치열했는지 내 어찌 알겠는가? 너무 어려 그 기간을 살았어도 알 수 없다. 한국 근현대사(史)를 통해서 그랬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그러나 동 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천재적인 두뇌와 혜안을 영아시절부터 가졌는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줄이고 있다.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고 평가하면서 “그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 득세하는 역사”로 폄하해 버리는가 하면 “가슴 속에 불이 나거나,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번씩 했다”고 일갈해 버리고 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서문에서) 정말 그런가? 정말 대한민국 건국 과정이 그런 역사 속에 이뤄졌는가? 그리고 1948년 이후 올
해 2008년까지 지난 60년의 역사가 그렇게밖에 인식될 수 없는가가 나의 거부반응이자 의문이다.1973년 이곳으로 이민오기까지 그 28년의 숱한 사건 속에 살았던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다. 첫번째 떠오르는 기억이 6.25 전쟁이다. 1950년에 사변(선전포고가 없었으니)은 어떻게 바꿔 설명하더라도 북한의 기습 남침이었다. 전쟁 3년 동안에 고향 진주의 남강 다리가 폭파되고 다닐 초등학교가 잿더미가 되어 가까이 있던 절에서 3부제, 4부제 수업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리저리 피난을 다닌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뒤에 따른 것이 4.19 혁명과 사회적 혼란은 학내에까지 파급, 교정의 질서는 어땠는가? 1961년 5.16 혁명(쿠데타로 바꿔 말하지만 혁명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세대다)은 “올 것이 왔다”고 모두가 반겼고 “하면 된다”는 기운이 전국민, 전국토에 팽배했다는 것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건설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대학시절의 6.3 데모(1964년 6월 3일)는 함석헌 옹의 흰 두루마기와 최루탄에 눈물 흘리며 연좌데모 한번 해봤던 그 기억이 전부다.
세월이, 그런 혼돈과 혼란의 시절을 살다 떠나온 고국 대한민국을 작년 여름에 여기저기 둘러봤을 때, 나는 지난 60년의 한국 현대사가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는 말은 하나의 선동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퀸즈식물원에서 열리는 ‘Korea, 1948~2008’ 사진전을 기다리는 이유는 내 인식의 재확인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