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의 벽을 넘어

2008-10-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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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미국인들과 처음 만나면 꺼내는 말들은 이렇다. “당신 중국사람입니까?” 그 다음은 “나는 중국음식을 제일 좋아해요” 또는 “나의 조카가 중국여자와 결혼했는데 이들 부부의 아이가 너무 예뻐요” 인종의 편견을 애써서 지워버리려는 표현이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아도 내가 이방인이라는 각인을 지울 수는 없다. 피부색으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미국사회에서 한국의 고유한 역사 배경은 한순간에 뭉개져 버리고 중국인이 되어버린다.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시아인은 중국 황화 유역에서 모집되어 철도건설 노동자로 이주해 온 ‘쿨리’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이민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먼저 미국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 이주 역사와 접목이 되고 있다.


중국인 철도 노동자들은 19세기 중반 서부지역의 사막과 록키산맥을 가로지르는 미국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해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같은 시간과 공간의 삶으로 이어주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인간의 접근을 막는 걸림돌이었던 절벽과 바위에 맞서 폭약을 뚫어 길을 만들면서 파편 조각처럼 죽어갔다.미국 대륙을 관통하는 동맥인 철도로 증기를 뿜으며 기관차가 숨가쁘게 달리기 시작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부로 뻗어갈 수 있었다.

서부개척시대 먼지를 뒤집어 쓰고 포장마차와 말로 사막과 초원을 달렸던 카우보이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도 끝났다. 이 때부터 중국 노동자들의 정착으로 희지도 검지도 않은 새로운 인종이 미국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아직도 다문화 다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합중국에도 인종의 벽은 두껍다. 망치로 두들겨 부셔도 부서지지 않는 것은 두꺼운 인종의 벽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기고한 칼럼은 피부색깔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는 북경(Beijing) 친구와 미국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 “흑인인 오바마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흑인들의 직업은 모두 청소부나 노동자가 아니냐?” “백인들은 흑인대통령을 뽑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지 않느냐?”
그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흑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은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그의 소신을 말한다. 브라운(Brown) 혹은 흑인(Black)이 프랑스나 독일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오바마의 피부 색깔 때문에 투표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며 표피 너머로 사람의 바탕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어서 미국의 소수민족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은 평등주의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놀라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의 칼럼의 현란한 빛깔의 글이 백인특권 중심 사회에서 얼만큼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흑백 분리법으로 흑인과 백인이 같은 버스의 좌석에 앉을 수도 없고 같은 학교를 갈 수 없었던 때가 그리 멀지 않은 반세기 전이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 이후 진행된 적극적 인종차별 시정 조치의 수혜자다. 왜냐하면 개정이민법(1965-The Amendments)은 아시안 이민자들의 아메리카 드림을 잉태시킨 법안이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인들을 위주로 한 인종차별로 얼룩졌던 초기 이민법에 비해 인종과 민족을 넘어 출생국가별 쿼타를 제거하고 가족의 결합을 이민법의 주목적으로 다룬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법안이다. 피로 물들었던 흑백 차별을 철폐하는 흑인 민권운동의 결실의 열매다.

이 때부터 한국인들의 이민 물결은 시작되었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기러기 떼처럼 날아와 미국땅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그 후 부모 형제도 초청하여 가족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아직도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압도적인 백인 주류 인구에 비하면 소수민족으로 남는다. 희지도 검지도 않은 피부색깔의 아시안 아메리칸은 새로운 인종개념으로 미국사회에 힘차게 태동하고 있다. 타인종과의 피부색깔에 대한 이질감은 물이 스며들지 않는 기름종이와 같다. 그러나 인종의 벽을 넘어 공감대의 띠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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