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단풍과 낙엽은 밑거름이 된다

2008-10-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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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10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산에는 단풍이 절정이다. 단풍들은 곧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나무들의 밑거름들이 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 자식들을 공부시켜 출가시키고 나면 단풍처럼 아름다운 노년에 들어선다. 그리고 낙엽처럼 자식들의 밑거름이 된다. 사람들은 늙어 세상을 떠나도 남는 것은 자식들인 것 같다. 자식들은 또 자식을 낳아 가문이 이어지며 부모 된 자들은 계속해 자식들의 밑거름이 되어간다. 순환의 연속이다. 한 가정의 이어짐이다. 자식들의 이어짐이 모두 없어진다면 인류의 역사도 거기서 멈출 것이다. 대를 잇는 한 가정의 모습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이어지게 하는 거대한 물줄기의 물과 같은 것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버버리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새벽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많이 길어졌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다. 자연의 순리다. 봄여름가을겨울처럼 계절이 확연히 구분돼 있는 곳에선 자연의 법칙은 더 실감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을 속이나 자연은 인간을 절대로 속이지 않는 것 같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인 것 같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그 누구라도 품어준다. 단풍으로 아름다운 자연
의 산을 보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엔 틀림없으나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


인간은 욕심대로 살아가려 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려 한다. 천년만년 살 것같이 기고만장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렇게 살아간다. 미국 발 경제공황이 세계를 뒤덮은 것은 인간들의 지나친 욕심이 원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있는 그대로 훨훨 살아가려 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경제공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인간들이 일으켰으니 인간들이 수습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으나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이 있다. 다른 동물은 수동적이다. 인간은 능동적이다. 인간에겐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정신력이 있다. 투지가 있다. 변화를 지향하는 꿈틀대는 정열이 있다.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택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식과 후손들을 위해 길을 잘 터놓는 것이다. 단풍이 낙엽 되어 떨어져 나무들의 밑거
름이 되듯이 다시 올 세대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허리를 졸라매고 밥 세끼 먹을 것 두 끼만 먹는 것이다. 욕심을 인간에게서 모두 빼내어 버린다면 인간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욕심을 조금만 내는 것이다. 자연처럼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열심히 사느라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더라도 가끔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높은 하늘로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보며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지구는 작은 구슬 하나에 불과하다.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찍은 것을 보면 푸른빛과 흰 빛을 드러내는 한 개의 구슬과 같다.
구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세계 상황을 한 번 그려보는 것이다. 경제공황이 지구를 휩쓴다 하더라도 지구라는 구슬은 그대로 돌 것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까닥하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인간 세대는 얼마 안 있으면 사라지고 후세대들이 밑거름을 받아먹고 자라나 구슬 안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 갈 것이다.

또한 그 지구라는 구슬은 자연의 이치대로 태어났음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구슬을 엄마 품처럼 따라다니는 작은 구슬이 있음도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달이다. 큰 구슬과 작은 구슬을 품어주고 있는 또 다른 불덩이의 큰 구슬이 있다. 태양이다. 지구만이 자연이 아니다. 지구와 달, 태양과 인간 모두는 다 자연이 낳았으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곳인 흙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흙은 지구 안에 있다. 지구는 하늘 안의 한 구슬이다. 그러니 죽어서도 하늘을 떠다니는 구슬에 남아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우주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단풍이 낙엽 되어 밑거름이 되듯, 우리도 단풍과 낙엽이 되어 후세대들을 위해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풍과 낙엽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땅 속에 스며들어 모든 나무들의 영양분이 될 것이다. 날씨가 쌀쌀하다. 욕심 덜고 순리대로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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