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무비자 시대 빛과 그림자

2008-10-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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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이제는 비자가 없어도 한국인이 미국에 올 수 있다니… 참으로 세상 많이 달라졌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200만 명의 한인들은 이곳에 오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수속 절차를 밟고 입국 날짜를 기다렸던가! 격세지감을 느낀다. 비자에 실린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미국에 입국하려는 사람에게 있어 비자는 그만큼 중요한 비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그 열쇠가 무비자시대가 되면서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무비자의 시초는 미국이 영국에 대해 관용을 베풀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무비자 시대를 연 나라가 영국이다. 미국은 비단 영국에 대해서는 그 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라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에 대해서는 유독 관용을 베푼 모양이다. 그 후로는 미국과 무비자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어느 나라고 매우 힘들었다.우리나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과 무비자 시대를 열기 위해 남몰래 엄청나게 애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무비자가 되느냐, 안되느냐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지내오다 이제 그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은 무비자의 혜택을 많이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미국행 여행이 편리해져 앞으로는 비자를 받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돼 이제까지의 고민거리를 말끔하게 해소하게 된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에 오기 위해 비자문제로 주한 미 대사관에 가게 되면 이리 까다롭고, 저리 까다롭고 한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이런 경우를 당해본 한국인들은 누구나 도대체 민주주의 국가가 부르짖는 여행의 자유가 과연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혼돈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다시 말하면 이는 민주주의의 혼돈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내놓은 몇 가지 조항 중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여행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의 국민이 미국을 여행할 때 여행의 자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대사관을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과연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여행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지, 아닌지 그 조항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국으로 공식 발표함에 따라 무비자시대가 도래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한국이 세계 여러 나라들 중에서 기적적으로 경제를 일으킨 나라로 하나의 예를 들 수 있는 국가가 되었지만 과연 한국의 전 국민이 잘 사는 나라인가. 한국에서 기차여행을 하든지, 자동차를 타고 가든지 창밖을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 아직도 한국은 열악한 나라이다. 비닐하우스에 야채를 키우는 사람, 호미나 낫을 들고 농사짓는 사람, 또 기준에 맞지 않는 우리
에 소나 돼지를 키우는 풍경, 지게를 지고 가는 사람. 구루마를 끌고 가는 사람, 경운기를 타고
가는 부녀자들, 이런 모습을 볼 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가 바라보는 것만큼 잘 사는가 의구심이 든다. 도시에는 아직도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매춘이 횡행하고 사기범이 들끓는다. 이러한 사회 저변의 인구들이 무비자를 이용해서 미국으로 대거 몰려올 런지도 모른다.

매춘하는 여성들이 미국공항으로 직접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캐나다를 통해 국경을 걸어서 넘어오는 사람도 있고, 넘어오다 잡힌 사람도 있고, 용케도 잡히지 않고 넘어와서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무비자시대에 정당한 사유로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만 존재할 것인가. 만일 이 무질서한 무비자시대의 모습이 미국에 비쳐진다고 할 때 언제 또 다시 무비자시대가 문을 닫을 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도덕의 국가요, 질서의 국가다. 한국인들은 이런 나라에 와서 좋은 이미지를 심고 가야 한다.

미국을 찾는 한국인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질서에 있어서 미국이 인정하는 그런 국민의식을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 가뜩이나 공항에서는 한국에서 젊은 여성이 오면 이민국 심사관이 까다롭게 심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이곳에 많이 오게 되면 그것은 큰일이다. 한국에서 사기치고 미국으로 도망오고 하는 그런 한국인들은 또 없을지... 이들이 여기 와서도 애써 벌고 있는 현지 한인들을 혹시나 등쳐 울리는 그런 사태는 없을 런지 한편으로 걱정이다. 너무 성급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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