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화, 그 진정한 의미는

2008-10-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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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수필집 출간차 새벽 4시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어디가 어딘지 몰라 낯설은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중나온 동생 내외가 반가웠다.
서울 시내 곳곳의 도로는 넓혀지고 빌딩은 높아지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19년, 엄청나게 달라졌다. 외형상의 변화만큼 내면적 성장도 함께 했는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정부는 고급 주거지에 부과하는 종합 부동산세 하한선을 6억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 하고 야당은 부자들만 좋아라 하는 발상이라고 뉴스에서 떠들고 있었다.한국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림길은 부동산을 소유했느냐, 못 했느냐에서 시작되었다. 정치를 하는 이는 늘 가진 자 편에서 생각하고 백화점의 매상이 가진 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 속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한 집안에서 잘 사는 형제와 좀 못 사는 형제 사이에 감정의 앙금같은 것이 남아 불화하고 불평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형제간의 감정의 골은 더 여유롭고 더 배우고 나이 먹은 쪽에서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감싸 안아야 할 것이다.


영등포 역, 롯데 백화점 8층 식당가에서 점심 때 만날 약속을 했다. 옛날의 초라한 역은 사라지고 민간 자본을 동원해 밑에는 현대식 역사를 짓고 그 위에 공중에는 투자한 회사에 이용권을 주어 고층건물을 짓게 한 것이다. 땅은 좁고 가격은 뛰고 모든 건물들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점심시간의 8층 식당가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자들은 은퇴한 듯한 노인 몇 사람 뿐이고 거의 여성들이었다. 아파트가 6층 이상은 주거환경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부동사산 이론이다. 그러나 도시 재개발
의 의미는 기존의 거주자들에게 배상을 해주고 더 얻어지는 ‘부가가치’를 위해 높을수록 좋다고 서울의 근교는 온통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현대식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여 기존의 소유주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전세금 정도의 보상금을 쥐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서민들의 한숨은 무시된 채 지금도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다.한국의 고령 인구가 500만을 넘어섰다는 신문 보도이다. 60세도 안되어 조기 은퇴하여 남은 긴 세월을 할일 없이 지내야 하는 이들에게 세월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들 중에는 한참 활동할 능력도 있고 교육시키고 부양할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인생 말년을 걸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신생아 출산율이 너무 저조해 지방자치별로 출생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라디오 소식을 들었다. 노인은 늘어나고 신생아는 줄어들고 이 ‘불균형’ 상황은 한국의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될성 싶었다.한국 방문 중에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이 있었다. 용산의 옛 미군기지 자리에 새로 들어선 중앙 박물관이었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새롭고 좋았다. 많은 외국인들은 한 나라를 방문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보고 그 나라와 국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 새로운 박물관이 한국의 새로운 얼굴로 보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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