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 건너간 노벨상

2008-10-18 (토)
크게 작게
백춘기(골동품 복원가)

노벨 시즌이 되면 한국의 문학계도 한 줄기 희망을 가져온지 오래다. 금년도 기대는 빗나가고 문학상은 프랑스 루크레이지오에 돌아갔다. 특히 경이로운 일은 노벨 물리학상 분야에서 수상자 3명(한 명은 일본계 미국인)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토종 일본인 수상자 고바야시 마코도(일본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소 교수) 마스키와 도시하데(교토대 교수)는 초등학교에서 대학 박사학위까지 일본에서 수학하고 얻은 순 일본 국산 출신이라니 놀랍다. 이들에게 ‘오렌지’를 ‘아렌지’로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노벨상 수상이란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구상 최고의 영광이요 출신 당사국 또한 이에 버금가는 자랑이다. 한국 문학계 기성작가 가운데서도 몇 사람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되는 등 국민의 성원 가운데 기대가 크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인에게 노벨상이란 물 건너간지 오래가 아닌
가 하는 착상이 웬지 앞을 가린다.


김대중 동경 납치사건은 냉전시대 하의 공산권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 자빠지게 하는데 충분한 사건이었다. 일약 김대중은 세계 정치계가 주시하는 세계 공인이 되었다. 그 후 반독재 민주화운동, 반복되는 투옥, 사형 언도, 대통령, 남북교류, 평화정착 등 김대중씨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는 스웨덴 노벨위원회로부터의 소식에 전 지구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오직 한 곳을 제외하고!

당시 대한민국 제 1야당 한나라당이 바로 그곳이다. 이 때 나는 이름하여 조,중,동에 실린 김대중 노벨평화상에 얽힌 폭로 기사 운운하는 내용을 읽
고 기절초풍했다. 어떤 부류의 내용이라는 것은 독자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스웨덴 노벨위원회에 편지를 보내어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부당성을 항의하고, 심지어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 이○○은 한나라 당원을 몰코 스웨덴 노벨위원회에 가서 김대중 귀환 항의 데모를 하겠다고 설치는 기사를 연일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 너무도 생생하게 아는 사실이다.
이런 민족적으로 부끄럽고 슬픈 사태가 일어나게 된 저변을 들춰보자. 거기에는 노벨평화상을 우리 민족이 수상했다는 자긍심을 훨씬 능가하는 지역감정에 찌든 질투와 시기심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서 터지고 말았다. 노벨위원회 사무국에서 항의성 성명을 발표하였다. 당시 도하 신문지상에 난 기사 가운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문구가 있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 자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부당한 수상자라고 매도하고 있다. …본 노벨위원회 수상자 평가 기준은 최상급이고 공정 공평하다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지극히 당연하다 …한국의 노벨위원회와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영예스럽지 못한 언동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법원 판결문이라면 몇 년 형에 해당하는 선고문인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지구상에 가장 공정한 선출이라고 세계인이 공인하는 두 싸인이 있다. 새 교황을 무사히 선출하였다는 로마 교황청의 시스티나 예배당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와 스웨덴 노벨위원회가 노벨수상자를 선정했다는 발표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