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국경제 깎아내리는 외국 언론

2008-10-17 (금)
크게 작게
이기영(고문)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 위기가 이제는 국가 부도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무제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에서는 외국자본이 급속이 유출하면서 외환부족 사태가 심각해져서 공적자금 투입은 고사하고 외환지불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한 나라가 아이슬란드이다. 아이슬란드는 철강 수출가격이 폭락하고 수출이 둔화되면서 외환수입이 줄었다. 이런 상태에서 달러 예금의 인출사태가 발생하고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IMF에 손을 벌리게 되었다.아이슬란드에 이어 헝가리, 그 다음에 우크라이나도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한다. 또 폴란드와 발트 3국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하고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도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런 국가들은 경제규모가 작은데다 수출로 먹고 사는데 구미경제의 침체로 경제위기가 우려되면서 외국자본이 급속히 탈출하여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1997년 외환 부족으로 대외 단기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다. 구제금융을 받으면 그 나라의 경제가 IMF 관리를 받게 되는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의 구조 조정과 고금리정책 등이 고강도로 실시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해 진다. 또 외환 보유고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의 기업과 부동산 등 자산을 해외에 매각하게 되므로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증대하여 차후에 더 큰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그런데 최근 외국의 언론들이 한국의 경제를 깎아 내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파인낸셜 타임즈는 한국 경제가 ‘침몰하는 느낌’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월스트릿 저널 인터넷 판은 ‘한국은 아시아의 아이슬란드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이 아시아에서 위험순위 1순위라고 보도했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두 신문의 보도를 다른 언론들이 여과 없이 인용하여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도들이 사실과 달리 왜곡된 보도라는 것이 더욱 우려되는 일이다. 파인낸셜 타임즈는 한국은행의 예금대출 비율이 103%인 것을 124%라고 잘못된 수치를 예로 들었고 한국기업의 부채 비율이 지난 1997년 423%에서 현재 93%로 떨어진 사실은 고려하지 않았다. 또 내년 6월까지 만료되는 단기 외채가 1,750억 달러라고 했는데 이 외채를 상쇄할 수 있는 600억 내지 700억 달러의 수입계정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이 세계 61개국을 대상으로 국가와 금융기관,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종합하여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비교적 경제상태가 건실하여 세계 26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에서 위험 1순위라는 말은 왜곡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임스 울펀스 세계은행 전 총재는 한국 가계의 저축률이 높아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접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으며 방어체제가 구축되어 있다면서 한국인들이 진정하고 인내할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언론이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제심리는 대단히 민감하여 조그만 뉴스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불경기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불경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갑을 닫으면 불경기가 된다. 더구나 파이낸셜 타임즈나 월스트릿 저널 같은 유명 언론의 보도는 사실여부를 떠나 다른 언론매체에서 인용되며 인용 보도는 원래의 내용보다 더 확신을 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뉴스가 확대 재생산 된다.

그러므로 한국이 이 경제위기의 시대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경제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서 한국경제의 실상을 세계 언론에 바로 알려야 한다. 왜곡 보도에 대하여 항의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고 경제전반에 대한 배경을 이해시켜야 한다. 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전문기관에서 경제진단을 받아 그 결과를 홍보함으로써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식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