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로를 돌보아야

2008-10-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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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고려연합감리교회 목사)

현대인의 특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다. 자기 자신 외의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아니하려 한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간에도 서로를 돌보는 일을 짐으로 여긴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현대인들은 제각기 떨어진 섬처럼 고립되어 존재한다.이와같은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우선 농경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은 농토를 떠나서 쉽게 이동해 갈 수가 없었지만 현대인들은 쉽게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고향도, 집착해야 할 공동체도 없다. 언제든지, 미련 없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버리고 마음대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닐 수 있다.또한 악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이웃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국가가 있고, 사회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을 돌보는 책임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아는 현대인은 그 책임을 국가와 사회 제도에 떠넘긴다. 바로 ‘내’ 눈앞에 누워있는 헐벗고 굶주린 노숙자 문제도 ‘내’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고, 사회제도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 옆집의 사람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농경사회에서는 ‘내’가 수확한 농산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도 나와 내 가족이 살 수 있었다. 거처를 마련하고 땔감을 해결하는 일도 자신의 일이었고 옷감을 짜거나 옷을 만들어 입는 일도 자기 자신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농경사회에서 자녀들은 집안 일을 돕는 일꾼들이었고 노후 생활을 보장해 주는 보험같은 존재였으며 늙은 부모는 육아와 농사 및 모든 생활의 지혜를 전달해 주는 존재였다.

농경사회에서 가족이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토록 소중했던 가족도 현대사회에서는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자식이 해주던 일을 사회보장제도가 해 주고, 부모가 해주던 일을 교육기관이 해 준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개인의 지식이나 정보는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하루 세 끼 식사조차 도처에 널려있는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이제 인간은 제각기 홀로 마음껏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인이야말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온 세상은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어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세상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홀로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서로 돌보고 사랑하며 살라고 명령하셨다.현대인은 농사를 짓는 일, 음식물을 만드는 일, 옷감을 만들고 옷을 만드는 일, 건축자재를 만드는 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 그 물품들을 운반해 오는 일... 그 중의 어느 것 하나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혼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온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미국인들의 부동산 문제나 월가의 문제는 ‘내’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어리석다. 심지어 “잘 나가던 때에 수 천억원을 벌어들이던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느냐?

미국이 당해야 할 고통을 왜 우리에게 이전시키느냐?”고 불평하면서 잘 사는 사람들이나 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쓰러지기를 바라고 미국이 망하기를 바란다. 미국이 잘못되면 그 때는 자기가, 혹은 자기 나라가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누가 미래에 최고가 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열려진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질투와 경쟁심으로 다른 사람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국가나 사회제도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죄악이다. 이런 것은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가나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어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었느냐?”고 하신 예수의 질문에 현대인들도 각자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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