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리

2008-10-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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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옛 로마시대의 노천극장이나 그리스의 노천극장을 가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 천, 아니 수 만명의 관중이 반원형으로 축조된 높은 층계식 자리에 앉아 아래쪽 멀리 내려다 보이는 무대를 바라보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소리란 위에서 아래쪽으로 가거나, 직선으로 가기보다는 아래에서 위로 향할 때 멀리까지 전달이 된다. 이런 이상하고 야릇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소리의 전달구조를 깨달은 옛 로마인들이나 그리스 사람들은 노천극장들마다 모두 무대를 맨 아래쪽에 놓고 관중들을 모두 위에다 모셔 앉도록 했다.


천둥소리가 아무리 커도 그것은 높은 데에서 아래로 오는 소리라 소리로서 세상을 뒤집어 놓지 못한다. 직선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 자세를 낮추고 미안한 듯 낮은 소리로 하는 대화가 가장 잘 들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정에서 가장 잘 들리는 소리는 뻣뻣하고 우렁찬 아버지의 말소리가 아니다. 또한 집안 일에 시달리며 짜증을 입에 물고 우왕좌왕하는 어머니의 말소리도 아니다. 가장 낮은 곳, 방바닥에 누워서 옹알이거나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의 소리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젊은 부부는 신혼의 재미가 깨어질까 그의 아기를 이층 방에 누이고 잠을 자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기를 잃었다. 아기가 뒤척이다가 엎어져 깔고 뉘인 푹신푹신한 요에 얼굴을 묻고 숨이 막히자 목청껏 울어대는 아기의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는 직선의 소리보다도 약하고 직선의 소리는 아래에서 오는 소리보다 더 약하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는 언제나 언덕 아래 가장 낮은 자리에 서서 언덕 위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만났을 때에도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여 말씀을 하시었다. 물은 가장 낮은 자리에 고인다. 예수는 가장 낮은 자세로 물에 떠있는 베드로의 배 위를 택하시고 수면보다 높은 곳에 서있는 베드로를 향하여 낮은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나를 따르라!” 베드로는 그간에 있었던 삶의 손을 비우고 주저 없이 예수를 따라 나서도록 감동을 받았다.

낮은 자리에서 낮은 목소리로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은 오만에 젖어 위에 서서 군림하려는 사람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힘이 강하고 가장 잘 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예수를 핍박했지만 예수의 낮은 자세와 예수의 강론 장면에서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갈 때 가장 잘 들린다는 소리의 성질과 소리 전달의 구도를 깨닫고 이를 토대로 고대 노천극장을 설계했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전달이 잘 되고 힘이 강하다.

현대인들은 모두 위에 서기를 바란다. 연회장의 무대를 보아도 청중이나 관객의 자리보다도 한 두 단계 위에 설치하고, 단상에 오른 사람은 단상에 올라서서 청중을 내려다 보며 한 마디 하기를 좋아한다. 관객이나 청중을 조무래기로 취급한다. 아무리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쳐도 제대로 듣는 자도 별로 없고 제대로 들으려하는 자도 별로 없다. 소리가 위로부터 내려오니 소리가 소리의 위력을 상실한다. 말의 내용도 그러하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주고받는 말들이 점점 충고하는 소리로 변하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가르치려 드는 소리로 변한다.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은연중 표시다.

아래에 서서 낮은 자세로 낮은 말로 겸손하게 말을 하려는 사람이 현대로 올수록 드물다. 가슴 속에 따스한 내용을 가득 담고 헤어지는 사람이 드물다. 심하면 내내 언짢은 표정으로 돌아간다. 소리의 자세를 알아야 할 때다. 높은 데서 으르렁대는 천둥소리에 혼을 빼고 놀라는 사람은 없지만 언덕 밑에서 불어오는 얇은 봄바람이나 가을 바람, 풀 밑에서 울어대는 단음의 여치 소리에는 가슴을 적시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만지작거리며 아쉬워 한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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