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자문화 사라진 후 전국민의 상놈화?

2008-10-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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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전통 식생활연구원장/새계 한식요리대회 조직위원장)

찌개 그릇에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넣어 오순도순 찌개를 먹는 우리네 작금의 모습이 외국인들 눈에는 아주 비위생적인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이런 비위생적인 모습이 우리의 전통문화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양반이 사회계층의 중심이었던 구한말까지는 상놈이나 찌개그릇에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담갔지 양반은 절대 같은 식구라 해도 찌개그릇에 함께 숟가락을 넣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양반 타령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찌개나 전골 냄비에 여러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이 마치 우리의 식생활 문화로 왜곡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구한말까지 우리는 엄연히 독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지금도 전통을 고수하는 지방 향교에 가면 소반(小盤)이 여러 개 실겅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잔치 모습을 그린 진찬도(進饌圖)나 진연도(進宴圖)를 보더라도 품계별로 독상을 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나와 있다.
이렇듯 우리의 식생활 문화는 가족 하나 하나 따로 상을 차려 먹는 독상 문화를 갖고 있었으니 다만 조손(祖孫)간이라든가 부부면 겸상을 허용할 때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첩 반상이라는 것도 역시 독상인 반상을 말하는 것이며 여러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먹는 상은 반상이라 하지 않고 교자상이라 한다. 이 교자상 차림에는 술과 안주를 주로 하는 주안상 형식의 건교자(乾交子), 밥상 형식의 식교자(食交子), 주안상과 밥상 형식의 얼교자(얼치기상) 등 3가지가 있다.독상은 반드시 밥 한 그릇 국 한그릇 먹기에 알맞은 찬을 담아 밥을 다 먹은 후 음식 찌꺼기가 남으면 아니되었다.이토록 우리는 쌀 한 톨, 밥 한 톨이라도 버리면 천벌을 받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 바로 우리 조상의 검소한 식생활이었다.

우리가 아는 ‘음식은 푸짐하게 차려내야 한다’는 설은 일상적인 반상이 아니라 잔칫상인 경우다. 잔치 때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상물림도 하고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남는 것은 포장해 손님들에게 돌려보내므로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음식 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함에서 온 미덕이었다.
독상 문화에서 과연 찌개나 전골을 한 그릇에 끓여 함께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독상 문화는 별도의 전골 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전골을 국자로 알맞게 떠 각자 상에 올려놓고 먹도록 했다.그러나 독상 전통은 1900년대 이후 외세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두레반 문화나 테이블 문화가 시작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은소아(銀召兒), 은잭이라 불리는 국자가 사라지고 찌개 그릇에 여러 사람이 모여 숟가락으로 퍼먹는 상놈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 일본은 오히려 개인 독상 문화인 가이세키 요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이렇듯 우리의 전국민 상놈화를 불러온 국자문화의 퇴조는 우리 국민 70~80% 이상이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주요 위암 발병의 원인균으로도 지목되는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2년 마셜 박사에 의해 발견된 헬리코박터 균의 정확한 명칭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로 위염 및 위, 십이지장 궤양을 유발하는 원인균으로 알려져 왔다. 헬리코박터 균은 위 점막 밑에서 살고 있으며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지금 와서 독상 문화를 고수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의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전골을 국자로 각자의 그릇에 떠서 먹는 위생적인 음식문화를 되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 문명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오히려 식 행위는 옛날 우리 조상이 해왔던 슬기로운 문화보다 퇴보된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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