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 멈’ (Blindness)

2008-10-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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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멈’ (Blindness)

의사의 부인은 남편과 함께 수용되기 위해 맹인으로 위장한다.

★★★

극한 상황의 인간 본성을 ‘해부’

극한 상황 하에서의 인간의 수성과 고통 그리고 궁극적 인간성의 승리 같은 고상한 얘기를 공포영화의 틀 안에 묘사한 철학적인 우화다.


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 작가 호세 사라마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브라질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신의 도시’)가 연출했다. 국제적 올스타 캐스트가 출연하는 끔찍하고 처참한 드라마로 인간 본성의 해부도라고 하겠는데 외모와 내용이 좀비 영화를 연상시킨다.

도시도 그리고 인물들도 모두 이름이 없다. 러시아워에 차를 몰고 가던 남자(이수케 이세야)가 갑자기 눈이 멀면서 교통 대혼잡이 일어난다. 이어 이 운전자와 접촉한 그의 아내(요시노 키무라)와 그를 치료하던 의사(마크 러팔로) 등이 잇달아 눈이 먼다. 이들은 눈이 멀 때 암흑이 아니라 눈부신 백색을 봐 이런 현상을 ‘백색질병’이라 부르는데 전염성이다.

정부는 맹인들을 모아 폐기된 정신병원에 가둔 뒤 군인들로 하여금 이들을 지키게 한다. 도망 자는 무조건 사살된다. 첫 운전자와 의사 등도 이곳에 수용되는데 의사의 아내(줄리안 모어)가 맹인으로 가장하고 남편과 함께 수용된다.

영화는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 부인의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혼란과 광기와 공포의 목격담식으로 전개된다. 맹인들이 갇힌 수용소는 수용 인원이 늘어나면서 지상의 지옥화 한다.

식량이 떨어지고 생활조건이 악화하면서 사람들의 인간성은 절망적인 지경으로 악화된다. 이 와중에 총을 쥔 남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이끄는 폭력배들이 식량과 금품을 교환하더니 이어 식량 대신 여자들의 몸을 요구한다.

견디다 못한 의사의 부인이 같은 방의 사람들을 이끌고 폭동을 일으킨 뒤 수용소를 탈출한다. 부인이 이끄는 사람들은 남편과 운전자 부부와 젊은 창녀(알리스 브라가)와 원래 한 눈을 실명한 나이 먹은 남자 등(대니 글로버). 이들은 맹인들이 좀비처럼 헤매는 폐허 같은 도시를 가로 질러 의사의 집에 도착, 공동생활을 시작하는데 이 부분이 아름답다. 경적을 울리는 듯한 음악과 모어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R. Miramax. 전지역.

hjpark@koreatimes.com

박홍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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