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래의 독도

2008-09-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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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홈아트 갤러리)

1910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그리고 육군대신과 일본총감을 겸한 대라우치가 서명한 ‘한일합병조약’을 보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제 1조-대한 황제폐하는 대한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일본국 황제폐하에 양여한다. 제 2조-일본국 황제폐하는 앞 조에 게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대한을 일본제국에 병합할 것을 승낙한다.

1945년 7월 26일, 일본이 조건 없이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한 독일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스즈키 일본 수상은 선언 묵살과 계속 전쟁에 매진할 것을 선포했다. 그 결과,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죄 없는 민간인 20만명이 죽었다. 비틀거리던 일본은 강펀치 두 대를 더 얻어 맞고서야 무조건 항복을 천왕이 15일 방송에서 선언했다. 그리고 9월 2일 미조리 함상에서 맥아더장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한반도와 중국에 일본의 침략전쟁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전쟁 책임을 불문에 부쳐진 회의였다. 또한 미국은 대만정부만을 중국으로 인정했으며 영국은 중공을 중국으로 승인하였고 한반도 역시 둘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48개 국가와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서 일본과 연합군 사이의 전쟁상태는 종결을 보았다. 평화조약이 발효되던 1952년 4월 28일자로 그들 주권을 다시 회복하여 국제사회에 다시 복귀한다. 그러나 대일전의 주축이 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따로 조인되면서 미군이 계속 일본에 주둔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했던 것이다.

전쟁 범죄자의 수갑은 풀어준 대신 족쇄를 채움으로 일본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틀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1947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총선안이 가결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에 새로운 민주 주권국가로 대한민국이 태어났다. 6.25전쟁 속에서도 국제감각이 탁월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의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3개월 전, 1952년 1월 18일 리 하인선(평화선)을 전세계에 선포했다.육지가 아닌 우리나라 해양 주권선이다. 함경북도 고정리에서 동쪽으로 동경 132°50、, 제주도 남쪽 북위 32°, 서해안 동경 124°, 평안북도 마안도 서안에 이르는 해안선이다. 독도 앞바다는 물론 한국정부 허가 없이 평화선을 진입하는 모든 외국 선박, 일본 어선은 체포하였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한일협정에서 평화선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양보하였다. 우리 정부가 잘못 했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제협정에서 ‘득’이 있으면 ‘실’이 있게 마련이다.박정희 정부는 학생들의 강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에 조인하고 그 배상금이 힘이 되어
오늘의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또한 독도 앞 우리 바다를 공해로 양보하였다.건국 60년,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68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2만달러를 넘겼다. 지상군 56만, 해군 6만7,000, 공군 6만3,000, 세계 9위의 막강한 군사력은 물론 경제 또한 세계 12위권에 도달
할 정도로 지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짧은 기간에 높은 성장을 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있는 한 일본은 독도에 근접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일본 수상이 바뀔 때마다 목소리를 높인 것이 독도 문제였다.이명박 정부는 이번 독도문제를 발 빠르게 대응하였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부시대통령이 취한 것은 원상복귀이지 종전보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쇠고기 파동과 맞물려 병 주고 약 준 꼴이 되고 말았다.철없는 일본의 아이들은 ‘다케시마’가 한국에 빼앗긴 자기네 땅이라고 날조된 책으로 교육받고 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3,40년 후 일본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일본이 족쇄에서 풀어진다면, 그 때는 독도가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 국민들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한층 더 수위를 높여 미국 정치인들을 로비해서라도 ‘한미동맹’ ‘일미동맹’이 살아있을 때 독도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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