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발 싸우지 말자

2008-09-08 (월)
크게 작게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대규모의 종교 분규가 인도에서 터졌다. 힌두교도들이 기독교도의 마을 칸다말을 습격하여 최소 열 명을 살해하고 1천 채의 가옥을 불살랐으며 5천 명의 난민이 밀림에 도망쳐 양식과 식수의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두 주 전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힌두교의 지도자를 암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정부는 마오이스트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힌두교 측에서는 기독교도의 범행으로 규정하고 폭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현지의 지도자 파리차 신부는 90개의 교회당과 기도처가 불살라졌다고 보고하였다.

엄청난 종교 분규이다. 한국에서도 이 명박 정권의 종교에 대한 편향적 태도에 항의하는 불교계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종교 대 종교의 이런 대규모 집단 행위는 근래 한국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아랍과 이스라엘을 위시하여 중동지구는 종교분규의 화약고이다. 또 다시 9월을 맞아 대낮에 세계무역센터를 향하여 항공기로 자살 충돌한 끔찍한 테러 악몽이 생생하다. 인간들은 왜 이토록 서로 미워하고 싸울까?


지난 백 년의 인류역사는 곧 싸움의 역사였다. 2차 대전 후만 해도 100개의 나라에서 130건의 군사 분규가 있었고 3천 5백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세계 1차 대전에서만 1천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걸프전에서 약 5천만 명이 희생 되었다. 인류는 지난 백년 동안 아
귀다툼을 하면서 그런대로 귀중한 두 가지 진리를 배웠다. 첫째는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이고, 둘째는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사실이다. 대립이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는 교만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살자. 피차 돕고 의지하자. 함께
잘 되자.’는 형제애 정신에서 나온다. 실상 모든 종교가 이런 아름다운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이 서로 싸운다면 그 보다 더 웃기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은 없다.

가을의 정서를 전해주는 귀뚜라미의 생태에 대하여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그들은 노래할 때 교향악 지휘자처럼 앞에 달린 수염을 휘저으면서 날개를 비벼 바이올린 연주를 겸한다고 한다. 귀뚜라미의 노래는 모두 3악장인데 제1악장은 ‘영토선언’으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는 큰 음성이고, 제2악장은 ‘투쟁’으로 용기를 과시하는 날카로운 소리로 변한다. 그러나 제3악장에 가서는 매우 가냘프고 정서적인 음성으로 노래하는데 주제는 ‘사랑’이다. 가까이에 암놈이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람이 귀뚜라미에게 배울 점은 육탄전을 하지 않고 노래로 대결한다는 미풍(美風)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불교와 기독교가 반목하지 말고 ‘합창 콘서트’ 같은 것을 열면 어떨까? 미국의 ‘종교와 시민생활 포럼’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60%가 외국에 대한 무력행사에 반대하고 외교적인 개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먹질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말로 풀자는 것이다.
바웬사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인류의 문제가 반대자를 제거함으로서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기준을 버려야 한다. 작든 크든 폭력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고 하였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도 “폭력을 쓰지 않는 것만이 현대의 혼란한 정치와 도덕에 대한 해결책이다. 압제와 폭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비폭력은 아프고 괴로운 과정이지만 거기에만 속량(贖良)의 힘이 있다.”고 말하였다.

예수의 유명한 선언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비폭력의 원칙이었다. 한국사에 길이 빛나는 기미년 만세운동은 비폭력 시위였기 때문에 의미도 영향력도 극대화 될 수 있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P’가 있다. 그것은 과시의 욕망(passion for pageantry), 소유의
욕망(possession), 보호의 욕구(protection), 이익의 욕구(profit), 애국의 욕구(patriotism)이다. 이제 인류는 여섯 번째 P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것은 평화에의 갈망(passion for peace)이다. 가공할 무기를 개발한다고 전쟁이 억제되지는 않는다. 단지 위험도를 높일 뿐이다. 평화는 오직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과 마음이 묶여서 이루어진다. 그 동안 종교와 교육이 사랑을 많이 얘기했지만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후손들에게 전할 때이다.

평화를 나타내는 한자 화(和)는 입 속에 밥이 있다(禾는 벼 화)는 구상으로 ‘경제적 평화’를, 안(安)은 집안에 여자가 있다는 의미로서 ‘사회적 평화’를, 평(平)은 심장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구도로서 ‘평화 이념’을 나타낸다. 평화로우려면 너와 나의 마음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이좋게 공존해야 한다는 옛 현자들의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