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경기부양책의 허실

2008-09-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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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지난 해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가 경기부진으로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견실한 것으로 보였던 일본과 유럽의 경제에 부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이 기대됐던 중국 경제에도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인플레와 무역적자, 내수부진, 환율 상승 등으로 9월 위기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들은 경기부양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감세조치이다. 미국은 지난 봄 납세자들에게 세금환급조치를 한 후 또다른 감세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민주, 공화 양당의 후보들도 감세를 공약하고 있다.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층, 공화당은 부유층과 기업을 포함한 감세를 주장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최근 중소기업과 중산층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고소득층,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큰 혜택을 주는 대대적인 감세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감세조치를 취하는 것은 세금 환불이나 감세가 개인의 구매력을 늘려주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감세로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늘면 소비와 투자가 늘게 되며 이로 인해 고용이 늘면 세수기반이 늘어나 경제도 살리고 재정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서민층은 가처분소득이 생기면 모두 소비하겠지만 부유층은 저축을 한다. 이 저축이 금융경색의 해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상태가 나쁜 상황에서는 투자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과거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은 불경기 타개를 위해 개인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크게 인하했으나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재정적자만 심화시켰다. 그러나 이 제도 개선이 꾸준히 실시된 결과 1990년대 경제호황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일본은 심각한 경제불황을 겪었던 1990년대에 3차례나 감세조치를 취했으나 불황 속에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경기부양에는 실패한 채 국가 부채만 악화됐다. 그러므로 지금 실시되는 감세정책의 성과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왜 이렇게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확신할 수 없을까. 경제에는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통계와 분석적 방법으로 경기를 전망하고 해법을 찾는 과학이다. 그러나 경제현상이 수많은 요인과 변수에 의해 결정되며 그 요인과 변수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어제의 이론이 반드시 오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더우기 정치제도와 정책, 사회심리의 변화와 국제경제의 상호작용에 의해 경제현상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기부진에 대한 정확한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지금 미국경제 전망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년부터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내년에 더 어려워져 앞으로 3~4년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러나 경제현상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호경기가 끝나면 반드시 불경기가 오고 불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호경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호경기가 되면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과잉생산이 발생한다.

한편 소비 쪽에서는 소득보다 많은 과소비로 인해 가계 부채가 늘고 구매력이 소진됨으로써 경기가 둔화된다. 기업은 고용을 줄이게 되고 그로 인해 경기가 더욱 악화되게 된다.경기가 불경기를 겪으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일이다. 경기가 부진하거나 침체 또는 불황에 빠질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은 중산층 서민들이
다. 이들은 직장을 잃어 생계가 어렵게 되어 심할 경우 집까지 날리게 된다. 부유층도 약간 어려움이 있겠지만 서민들에 비해 미약할 것이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은 오히려 불황기에 폭락한 주식이나 싼값에 나온 부동산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의 경우에도 자금력이 약하고 서민층을 상대하는 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불황의 타격을 더욱 크게 받게 된다. 더우기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정부가 내놓는 감세정책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일조할 수 있다. 서민층은 감세로 인한 가처분소득을 모두 쓰기에 바쁘지만 부유층의 감세액은 저축이나 투자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부익부를 부추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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