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모들의 백 투 스쿨

2008-09-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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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SEKA 사무국장)

‘백 투 스쿨’ 여름 내내 자녀와 씨름하던 학부모들은 나름대로 반가운(?) 시즌이다. 친구들과 어울릴 일에 설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여름 동안 흩어졌던 생활을 다잡고 새로운 계획과 준비에 바쁠 일이다.

백 투 스쿨 준비는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다. 부모도 마음의 준비를 새롭게 해야 한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부쩍 반항적이거나 얄밉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더 사랑해 줄 것인지 생각을 더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때다. 그러려면 ‘자식 사랑’이 근본적으로 어떤 것인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1956)>에서 사랑에도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표현된 에로스와 필로스, 아가페와 스토르게가 그것이다. 에로스가 남녀 사랑을, 필로스가 친구
사랑을, 아가페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킨다면 스토르게는 가족 사이의 친밀한 사랑을 가리킨다.


비슷한 시기에 씨에스 루이스도 <네 가지 사랑(1960)>에서 가족애(affection)와 이성애(eros) , 우정(friendship)과 무조건적 사랑(caritas)를 구별했는데, 각각을 고대 그리스 낱말에서 유추해낸 것은 프롬과 마찬가지다.프롬과 루이스의 생각을 종합하면 가장 이상적인 부모의 자식 사랑은 ‘스토르게’에 ‘아가페’를 더한 것쯤이 될 것이다. 자식 사랑은 친밀하면서도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어떤 종류든 사랑에는 생각과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고, 씨에스 루이스는 사랑이 수동적 감정이라기 보다는 능동적인 의지라고 했다.

이런 경고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천년 전쯤에 이미 성경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설파했었다. 한자 문화권의 사랑(愛)도 5천년 이상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랑 애(愛)자의 마음 심 윗부분은 ‘목메일 기’자다. 음식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것을 가리킨다. 마음 심 아래는 ‘뒤져올 치’자다. 발목에 차꼬가 채워져서 질질 끌려오는 모습이다. 이게 바로 한자 문화권의 사랑 개념이다.

답답하고 숨이 막혀도 ‘카악’하고 뱉어버리면 사랑이 아니다. 차꼬가 무겁고 발목을 짓눌러도 훌쩍 풀어내 버리면 사랑이 아니다. 숨통을 죄고 발목을 부여잡아도 견디고 버티어 나가는 게 사랑이라는 것이다.프롬과 루이스의 말마따나 ‘스토르게 더하기 아가페’가 진정한 자식 사랑이라면 부모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친밀해지려면 눈높이를 아이들과 맞춰야 하고 무조건적이라면 꾸욱 꾹 눌러 참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게 바로 학부모들의 백 투 스쿨 준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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