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 속의 한식당 풍경

2008-09-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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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형(World OKTA 명예회장)

모처럼 식구들이 모여 외식을 하게 되었다. 식당을 아들이 찾아내 그 식당에 모여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다.식사를 하는 가운데 식탁 중앙에 앉은 반바지 차림의 딸애가 숯을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어서 숯 만드는 이야기도 하면서 오랫만에 숯불로 구운 고기를 즐기고 있었다. 주로 개스불에 고기를 굽는 것만 보고 자란 딸이기에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 모양이다.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식사하는 도중에 다리에 불똥이 튀었는지 뜨겁다고 딸애가 자리를 비켜 앉았다. 음식 주문과 함께 들고 들어오던 벌건 숯불 통을 볼 때부터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한참 식사를 하던 딸애가 기겁을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자리가 불편해서 다리를 옆으로 옮기는 순간, 식탁 밑에 있던 과열된 양철통에 다리를 데인 것이다. 딸애의 다리에 작은 화상을 입게 되면 흉이 날 것이 염려되어서 괜찮은가 하고 들여다 보니 제법 상처가 나서 쓰라린 모양이다. 우리가 얼음을 찾고있는 것을 보고도 무심하게 일하는 종업원들을 보고는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식당인지 의심이 갔다. 마침 고기를 굽는 것을 도와주러 온 종업원이 “또 데었군요. 화상에 바르는 연고를 가져오겠습니다”하고는 반쯤 쓴 연고를 가지고 와서는 연고를 짜 주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염려하던대로 숯불구이를 하면서 안전장치는 전혀 하지 않아서 많은 고객들이 가벼운 화상을 입고 있구나 싶었다.문제의 심각성은 대답을 하는 종업원의 무신경한 태도와 함께 화상을 입은 것은 전적으로 손님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듯한 인상을 주기에 내심 매우 불쾌했다. 힘들게 일하는 종업원과 입씨름하기가 무엇하고 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잠자코 하던 식사를 계속했다.갑자기 일어난 화상과 식당 종업원의 태도로 인해 가족 모두가 어안이 벙벙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우울한 식사를 했다.

뉴욕 한 가운데에서 버젓이 영업을 하는 제법 유명한 식당이 이렇게 안전장치도 없이 영업을 할 수 있을가 싶어서 주인을 찾았다. 제법 나이가 든 종업원 아줌마가 대답하길 “주인은 인도네시아 휴가 갔습니다”. 그러면 매니저가 누구냐고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매니저도 없습니다”라고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세상에 어떻게 뉴욕 한가운데에서 영업을 하면서 이렇게 당당할 수가 있을까? 식탁 밑의 불판 통이 뜨거워지는 것을 알면, 철사 그물이라도 쳐서 손님이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해야 하며, 정히 어려우면 두터운 천으로 된 앞치마라도 주어서 손님들이 화상 걱정 없이 즐겁게 식사를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장사하는 기본이지 않을까? 숯불로 고기를 구우면서 안전에 대한 사전 주의 한번 없이 영업을 하는 그 배짱에 기가 막혔다.

항상 애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내세우던 내가 심히 무안을 느끼면서 모처럼의 가족 외식이 엉망이 되었다. 아마 외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다면 애들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단단히 따졌을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내 가슴은 답답해졌다.언제쯤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더욱 인기 있는 한식당이 등장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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