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11과 아쉬움

2008-09-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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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베이사이드)

7년 전, 9월 10일 밤, 케네디공항을 떠나서 다음 날 새벽 독일의 듀셀돌후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아침식사 후 바로 기차를 타고 콜론으로 출발했다. 이곳은 독일의 중산층을 상대로 한 유행이 빠른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들러 먼저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이 여정의 일부로 되어 있어서였다.

4시간 동안 시내의 상가를 돌아보고는 다시 기차에 몸을 싣고 듀셀돌후로 돌아와 호텔에서 피곤함을 달래며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점심을 먹으려는 순간, 난데없이 무슨 전쟁영화를 보고 있는 것같아 의아해졌다.화면에 나오는 건물들이 무척 낯익어 보였다. 전쟁영화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았다. 아니다. 이것은 분명 맨하탄이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혹시나 해서 채널을 돌려 BBC를 틀어 보았지만 역시 같은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쌍둥이 건물이 타면서 허물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뉴욕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국제전화 회선들이 온통 마비가 되어 미국으로는 연결조차 안된다는 것이다. 아니다 싶어 여정을 단축해서 곧 이태리의 밀란으로 떠날 계획을 하고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서의 소지품 검색은 전례에 없이 철통 같았고 마치 감옥소 입소 때와도 같이 철저하고 삼엄했다. 1회용 면도기까지 압수한다.밀란에서 부랴부랴 하루동안 일을 마치고 계속 뉴욕 집에 전화를 시도하다가 드디어 수요일에
야 통화가 되었다. 가족들은 다 무사했다.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일하는 아들은 인파에 휩싸여 걸어서 59가 퀸즈보로 다리를 건너 저녁 늦게야 집에 왔고, 46가에서 일하는 사위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서 그 날 밤을 지내고 화요일에야 집에 왔고, 집에서 키우는 ‘스쿠터’(귀염둥이 애완견 이름)는 그 날따라 이상하게 울더라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밀란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는 목요일부터 하루에 한 두편이 있었지만 토요일에서야 간신히 좌석을 받아 돌아올 수 있었다.가족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고 난 뒤에 제일 먼저 기다려지는 것이 다음 날 교회에 가는 일
이었다. 미국 성조기 핀을 사서 자켓 왼쪽에 꽂고 주일날 교회로 향했다. 이곳에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전혀 가져보지 못했던 애국심을 느껴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한 애착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엄숙하고도 슬픔에 찬 경건한 예배였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그것도 코 앞에 있는 맨하탄에서 이렇게 처절한 참사가 일어났고, 근 3,000명이나 되는 죄 없는 아까운 목숨을 잃었으니 나라를 위해서도, 목숨을 잃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또 무사한 우리를 위해서도 겸허한 하루가 될 수 밖에 없었다.어느 큰 교회 목회자의 설교내용인 즉, 이렇게 맨하탄이 공격을 받고 몇 천명이 죽은 것은 일요일에도 돈을 벌려고 문 열고 장사하는 사람들, 또 많은 사람들이 마약들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에 저주받은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었을까? 미국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반면 어느 교회들에서는 아예 9.11에 대해 말 한마디 없이 지낸 곳도 있었다 하니, 정작 교회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완전히 외면해야 되는 것일까? 내 교회만을 위해서 세상과는 담을 쌓고 믿음만을 외쳐야 하는 것일까? 교회는 정치와 이념과는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공의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공의를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자기네 교회만을 위한 봉쇄된 교회의 편향성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런 교회들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아미쉬’ 교파였다. 310여년 전, 스위스에
서 발단된 이 교파가 18세기에 미국으로 들어온 뒤 펜실베니아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자기네들만의 종교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완전히 격리되고 밀폐된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잘들 믿고 잘들 살고 있다. 자기네들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은 관광지로도 이름 나 있다. 그들만의 고립된 생활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찾아간다. 우리 주위의 일부 교회들도 별로 이들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또 9.11을 맞으면서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에 느꼈던 아쉬움이 계속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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