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배터리 효과

2008-09-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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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텔레비전의 음향이 끊기고 영상이 희미해지더니 그것마저 나오다 숨다를 거듭한다. 오래된 것이니 피곤할 때도 되었다. 그렇다고 개비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비용, 노력, 시간 등을 생각하면 피하고 싶어진다. 리모트 컨트롤을 만지작거리다 혹시나 해서 배터리를 바꿨다. 텔레비전이 활짝 살아나서 걱정거리가 한 순간에 날아갔다.

배터리의 종류는 다양하다. 모양과 크기 등을 바로 알지 않으면 용도에 맞지 않는다. 둥근 기둥 모양에도 굵기가 몇 종류 있고, 네모 상자 모양이 있는가 하면 시계 같은데 쓰이는 아주 작은 것은 핀셋으로 잡아야 하는 것도 있다. 하나의 규격으로 어떤 것에나 활용할 수 있는 배터리는 없는가.
그런데 이것보다 몇 배 더 복잡한 사람에게 필요한 배터리가 있다. 사람도 가끔 피곤해져서 삶을 100% 즐기거나, 일을 제대로 못 할 때가 있다. 기계처럼 배터리를 바꿔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 배터리가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르다. 그 배터리를 바꾸면 새 힘이 솟아남이 분명한데. 배터리의 종류가 휴식·여행·독서·스포츠·공연물 감상·친구 만나기·맛있는 것 먹기·산책·혼자 있기·음악 감상... 등 수도 없이 많고 개성적이다. 각자는 필요한 배터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으로 배터리를 적기에 바꾸지 못할 뿐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빠르게 배터리를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만일 그것을 실행하기 힘들 때는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긴 여행 대신 하루 동안이라도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 혼자 있고 싶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면회 사절’이란 글을 문에 붙이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 어떨까. 멀리 있는 친구가 만나고 싶으면, 전화요금 걱정 않고 그 친구와 오래 오래 통화를 하는 것도 좋다. 큰 식당에 갈 여유가 없을 때는 식품을 구입하여 공원 벤치에 앉아서 먹으면 시적이지 않겠나. 이렇게 마음을 달래면 배터리를 바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배터리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새 힘을 얻기 위해서이다. 새 힘이란 세상을 새롭게 보는 마음이다. 주위 사람들을 새롭게 보는 마음이다. 자연을 새롭게 보는 마음이다. 맡은 일을 새롭게 보는 마음이다. 언뜻 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을 새롭게 보는 마음은 새 힘을 불러 일으킨다. 새 힘은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주위의 모든 것이 쉴새 없이 변할 때 그 물결을 타고 나 자신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9월이 열렸다. 미국의 1월은 달력의 새 해 시작이고, 9월은 하는 일의 시작이다. 어른들은 새로운 기획으로 일을 추진하고 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희망의 달이다. 긴 여름 동안 성큼 자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들의 부모들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뒷받침을 하게 된다. 새 학년에는 야단치는 것보다 칭찬을 많이 하겠다. 어른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너희는 공부하라고 안 하겠다. 다른 애들은 잘 하는데 너만 못 한다 등등 다른 학생과 비교해서 말하지 않겠다. 쓸데없는 소설책 읽느라고 시간 허비하지 말고 학교 책만 읽어라, 밖에 나가지 말고, 친구 사귀지 말고, 책상에서 공부만 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기이다. 혹시 이런 배터리가 떨어져 가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9월이다.

우리들이 가전 기구들처럼 제각기 배터리를 가지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의 힘이 떨어져 가면 바꿔 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게에 가서 새로운 것을 살 필요도 없이 각자가 제 힘으로, 또는 주위 상황에 따라 재생 가능한 배터리를 찾으면 된다는 사실이 고맙다. 요즈음 지속적인 성장이란 말을 자주 듣고 있다. 학생들이야말로 뜨거운 에너지로 활활 타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존재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새롭게 바꾼 배터리로 새로운 길을 찾아 힘차게 출발하는 9월의 찬가를 부른다. 너도 나도 새 힘이 솟는 9월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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