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神)도 버린 사람들

2008-08-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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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오랜 기간 나로 하여금 궁금하게 했던 한 골동품에 얽힌 사연을 이제 비로소 알게되어 기쁘다.그러니까 20여년 전 겨울날, 늦은 시각에 힌두교 승려로 보이는 인도인이 나의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흙색 줄무늬가 잘 조화된 백색 대리석은 사각형 상사형으로 중간에서 둘로 분리하도록 되어 있다.

상자 안은 근육질의 왕성한 성인 남자의 성기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한 덩어리의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성기만이 산산조각이 나 있다.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느냐고 몇 번을 다짐하고 복원기간 한달에 10만달러의 보험을 요구한다. 자신의 보물이 품안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 있는데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보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작업은 무사히 마쳐지고 인도인은 매우 만족한 상태에서 남성기를 소중히 가슴에 품고 돌아갔
다. 그로부터 20년, 나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 성기 조각의 어디에, 아니면 어떤 사연이 10만달러의 보험을 요구하였는지 궁금했다. 이런 나의 의문은 한 책을 대함으로써 완전하게 해소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 <신도 버린 사람들(나랜드라 지다부 지음, 김영사 발행)>이다.


인도 최상위 대학의 총장인 ‘나랜드라 지다부’는 인도의 4단계 신분제도인 ‘카스트’에도 끼지 못하는 소위 ‘아웃 카스트’에 속하는 불가촉 천민(不可觸賤民·마하트) 출신이다. 남하고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지닌 ‘불가촉천민’은 그들의 침이 땅을 더럽힌다며 목에 오지그릇을 걸고 다녀야 하고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궁둥이에 빗자루를 달고 다녀야 했다. 이같은 불가촉천민에게는 자기 희생을 통해 천민들에게 생존권을 안겨 주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3천년 전 왕비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왕은 불가촉천민 ‘암루드나크’에게 왕비를 구해오라고 명한다. 암루드나크는 오랜 시일 끝에 드디어 왕비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왕은 시일을 오래 끈데 대해 혹시 그동안에 왕비가 강간이라도 당했지 않았나 하고 의심이 깊어진 나머지 암루드나크를 죽이려 한다. 이를 눈치챈 암루드나크는 왕에게 말한다. “대왕, 저를 죽이기 전에 제가 떠날 때 대왕께 맡겨둔 상자를 열어봐 주십시오. 거기에 저의 결백과 충성심이 들어 있습니다” 왕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왕은 놀람과 만족감으로 미소를 짓는다. 거기에는 아직까지 살아 움틀대는 남자의, 바로 암루드나크의 성기가 있지 않은가!

왕은 그의 요구에 따라 불가촉천민이 먹고 살아갈 52가지 권리를 부여한다. (1)송장을 치우고 죽은 자의 옷을 취할 권리 (2)죽은 동물의 가죽을 취할 권리 (3)빌어먹을 권리…(52)… 이런 스토리를 지닌 대리석 성기 조각에 10만달러의 보험이란 당연하다고 결론짓고 20여년 동안의 궁금증에 막을 내렸다.무릇 골동품에는 그에 걸맞는 스토리가 따르고 없으면 찾아야 한다. 없는 것과 있는 것과의 차이는 차돌과 다이아몬드 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미래사회는 이미 보편화 된 상품의 질보다는 그 상품이 지니는 꿈과 감성을 사고 파는 시대라고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 엔센은 진단하고 있다. 나도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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