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훈

2008-08-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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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회계사)

언젠가 고객과 식사를 하던 날, 나는 그 고객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부자 아버지는 자식한테 절대로 가난을 가르칠 수 없어요” 아주 간단한 한 마디지만 내 마음에 와닿는 정말 중요한 이치를 배웠다.

그 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말 여유있게 살았단다. 아버지의 공장 공원만 500명이 넘었었다니까. 그래서 어떤 때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하기도 했단다. 사람은 가난을 알아야 한다며 아버지는 여름이면 사촌 형들까지 데려다 공장에서 일을 시켰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 생각하니 완전히 코미디였다는 거다. 정말 가난해서 공장에서 일하면서 고통이 뭔지,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현실로 느끼지만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흰 쌀밥에 고기반찬이 있었는데 일하면서 무슨 가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겠냐는 거다.

우리나라가 배고픔을 이겨낸지 이제 25년쯤 되었을까? 세계 경제 랭킹 10위권에 육박하니 대단한 기적을 지난 25년 사이에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식량문제를 이미 해결한 나라이기 때문에 앞으로 배고플 걱정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한 번 부자가 됐으니 영원한 부자라는 말로 해석해야 하는가?


요즘 계속되는 불황으로 세계 곳곳마다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는데 지난번 한국 방문을 했을 때 국민들이 돈을 쓰는 모습이나 뉴욕에 와있는 유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전혀 경제 불황을 느낄 수가 없다. 뉴욕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민 상대로는 장사가 힘들지만 유학생 상대로 하는 장사는 아직 할만 하다는 얘기들을 한다.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축구는 또다시 8강 진출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혹시 우리는 아직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회상하며 한 번 4강은 영원한 4강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뤄냈으면 그 다음은 거기서 더 발전을 하던지 적어도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배웠어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이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세계 경제 3위라는 소개를 할 때 약 5,6년 전 들은 어느 유명한 목사의 설교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을 압도한 적이 언제 있었냐는 거다. 이제 겨우 20년 중국을 앞질렀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나라의 소년 소녀들이 중국으로 품팔이하러 가는 날이 올 것이다. 경제강국 3위를 기록한 중국을 보면 왜 그리 그 설교가 다시 내 귀를 쟁쟁하게 하는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이 해병대의 이치와는 절대 다르다는 것을 이번 우리나라의 축구가 또 한번 증명해준 사실과 지난 20년 우리가 눌렀던 중국이 다시 우리를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가난을 모르던 사람이 가난해졌을 때 겪어야 하는 느낌은 원래 가난했던 사람이 느끼는 것과는 비교하기도 힘든 몇 배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가난이 뭔지 고통이 뭔지 모르는 자손들에게 우리가 이뤄낸 기적과 신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가만 놔두면 그들이 가난이 무언지, 고통이 무언지 궁금해 하다가 어느 날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진짜 어려움을 피눈물을 흘리
며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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