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를 사랑하는 민족

2008-08-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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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미국땅에 코리언이 맨 처음 첫 발을 내디딘 그 날을 ‘재미한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오는 9월 2일 저녁 뉴욕 플러싱 KCS 회관에서 거행된다.

조선은 1882년 미국과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고 미국은 초대 주한 공사로 루시어스 푸트를 임명, 파송하자 이듬 해 고종은 외교적 답례로 처조카이자 이조참의인 민영익을 수석으로 하는 8명의 보빙(報聘)사절단을 미국에 보내 기우는 나라를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진 문물을 배워오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일행은 그 해 7월 26일 인천에서 태평양을 건너 근 40일만인 9월 2일 미국 서부의 관문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 상륙하였는데 이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되는 한국인의 미국 방문일 것이다.한국인의 미국이민 역사는 흔히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을 그 시작으로 꼽고 지난 203년 1월 13일 ‘이민 100년사’를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러나 이보다 20년 앞서 우리 선조의 발자취가 이 땅을 밟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소수 역사학자나 전문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재미동포들은 간과하고 있다.

물밀듯 밀려오는 외세의 파도, 무능한 통치세력들의 파쟁으로 풍전등화의 나라 운명, 미국에 마지막 실날같은 기대를 걸어보는 봉건왕조의 외교사절이 미국땅에서 겪는 역사의 편린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근대 한미관계사를 총결산한 방대한 노작 ‘뜻으로 본 재미 한인사’를 집필, 최근 탈고하고 출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새누리연구소장 박성모 목사는 “이 날(1883년 9월 2일)은 한인 이민역사의 시작점이자 한미관계사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서의 보완자료 수집차 최근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찾은 박목사는 보빙사절단의 족적을 따라 그들이 묵었던 팰리스 호텔에도 들렸다.사절단 일행은 샌프란시스코 견문을 끝낸 다음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시카고, 워싱턴을 거쳐 뉴욕으로 갔다. 그 해 9월 18일 일행은 뉴욕의 핍스 호텔에 머물고 있던 제 21대 ‘체스터 아더’ 대통령을 알현한다. 뉴욕타임스는 “조선의 사절단 일행은 사모관대를 하고 도포를 입고 조선의 궁정 의식으로 바닥에 꿇어 엎드려 큰 절을 올려 대통령을 당황케 했다”고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하였다.

일행은 미국의 상공회의소, 재판소, 병원, 공장, 농장 등 산업시설과 육군사관학교, 우편제도도 시찰하는 등 40여일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귀국, 고종에게 보고 들은 미국 문물을 상세히 보고하였다.일행 중 유길준은 유학생으로 홀로 남았다. 그는 보스턴으로 가 덤머아카데미에 입학, 영어와
신학문을 배우던 중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쉽게도 학업을 중단, 귀국하게 된다.그는 정변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체포, 투옥되기도 했으나 혐의가 풀려 석방된 후 ‘서유견문’이란 구미체류기를 국·한문으로 펴냈다. 그를 이어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유일한 등이 미국으로 망명, 유학생이 되었고 인삼, 약재상 등 200여명의 한인들이 미국땅을 밟았다.

이번 행사를 발기하고 추진하고 있는 추진위는 범교포적 행사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만열 교수를 초청했다. 이 교수는 기념식에서 강연하게 된다.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박성모 목사는 “역사를 사랑하는 민족에게 장래가 있다”면서 작은 조각 역사라도 갈고 닦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나아가 애국, 애족하는 길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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