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공보다는 행복을 찾아라

2008-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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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주말이면 어딘가를 가야 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대충 방향을 잡아 집을 떠난다.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인지 미대륙 동부쪽은 키웨스트로부터 노바스코샤까지 시골길을 온통 뒤집고 다녀 이제는 별로 갈 데도 없는데도 역마살이 두껍게 낀 탓으로 간 데를 또 가고 간 길을 또 간다.

이번에는 가다가 길이 막혀도 좋으니 샛길같은 구석진 길로 들어섰다. 큰 도시를 낀 야외의 집들은 야외로 갈수록 더 근사한데 이번에 들어선 시골의 샛길 가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모두 낡고 허름하다. 가끔씩 보이는 집 앞의 사람들도 허름하기 짝이 없다. 언뜻 보기에는 미국의 실망이 놓여있는 곳 같았다.나는 사람이 서있는 한 집 앞에 섰다. 60이 다 되어가는 듯한 건장한 사내 앞으로 가 그 사람에게 나를 먼저 소개하고 여기를 지나치게 된 연유를 심심치 않게 늘어놓고 양해를 구했다. 좀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청했다. 반가운 표정이었다. 기꺼이 집안으로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의외였다. 수 백권 쯤 되어보이는 책들이 책장에 가득하였다.


그 사람의 긴 이야기를 대충 간추려 보면 삶은 결국 행복하기를 바라는 투쟁에 불과한데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목적은 뒷전에 두고, 아니 잊어버리고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이기는 자의 몫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본의든 아니든 모진 싸움을 치러야 한다.일찌기 명문대학을 거쳐 명문대학원까지 나온 이 허름한 사람은 왜 오솔길 길목 외진 농촌인 여기에서 살고 있을까? 소위 말하는 대기업의 CEO는 아니었지만 중역이란 위치에서 경쟁사와의 치열한 싸움을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인정을 받아야 했다. 승승장구했다. 사무실이 집이었고 사무실 밖이 그에게는 정원이었다. 그런 동안에 대학에서 만나 열애 끝에 결혼을 한 부인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은 아내는 병색이 점점 깊어져 갔고 결국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암이었다. 대충 얼마동안 살 수 있을거라는 병원측의 말을 듣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내가 원하던 것은 남편의 성공과 남편이 벌어다 주는 큰 돈이 아니라 삶을 같이 하며 같이하는 삶으로부터 오는 행복이었다. 남편이 평온한 마음으로 옆에 있어준다면, 또한 성공과 성공에서 오는 커다란 수입에 온 정신
을 동원하여 몰두하기보다는 따뜻하고 정겨운 대화를 장작불 삼아 집안을 데운다면 아내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원했고 남편은 성공을 원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가 손꼽았던 그 작은 행복의 조건을 깨달았을 때에는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만 했을 때였다.

급한 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사람들의 눈길이 적은 뉴햄프셔 시골을 택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잃어버린 둘만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였다.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이곳 생활은 행복했다고 했다. 아내가 더없이 행복했기 때문에 덩달아서 자기도 더없이 행복했었다고 했다. 그 행복의 여운이 지워질까 두려워 아내를 하늘나라에 보낸 후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아내의 흔적과 살고 있다고 했다. 성공하려고 발버둥을 치
기보다는 진작에 행복을 찾아야 했었다고 말했다. 행복해 보였다.

사회적인 성공이 결코 내 곁에 항상 가까이 있어주는 것은 아니고,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이라도 항상 내 주머니 속에 있어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삶을 같이 하며, 정을 나누는 사람만이 언제나 곁에 있어주며 행복을 제공한다. 사랑과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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