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하루 하루가 살 판 난다

2008-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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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또 하루가 시작된다. 그 ‘하루’는 만세 전에도 있었고 만 세 후에도 있을 그 ‘하루’다. 시작과 끝이 없는 하루지만 사람들은 매일 새벽 동이 트고 아침이 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한다. ‘새로운 하루’. 분명 어제의 하루는 아니고 내일의 하루도 아니다. 오늘 만의 하루다. 하지만 그 하루는 어제의 하루요 오늘의 하루요 또 내일의 하루다.
하루란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동안, 대개 자정(子正)에서 다음 날 자정까지를 뜻한다. 자정은 밤 열두시를 말한다. 하루는 즉 일일(一日)이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시간으로 24시간, 분으로 환산하면 1440분, 초로 환산하면 8만6,400초다. 역으로 환산하면 1초가 60이 모여 1분이 된다. 1분이 60번 합해 1시간이 된다. 1시간이 24번 모이면 하루가 된다.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營倉)에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블록을 쌓아 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 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니 거의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하루가 지난 것이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 즉 3천6백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 가산된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의 우수리가 붙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4일 타계한 러시아의 양심이라 할 수 있는 솔제니친의 단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 마지막 부분이다. 그는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체제 안에서 억압당하는 인간과 비인간적인 강제노동소의 진상을 세상에 고발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란 소설 중 인물을 통해 수용소에서의 단상을 ‘하루’란 시간으로 압축시켜 인간의 생존과 존재의 가치를 그려낸 것이다. 소설 내용은 이렇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슈호프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혔던 것이 간첩으로 오판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는 단순한 성격으로 배운 것도 없다. 그래서 비인간적인 수용소의 처우에도 맞서지 않고 탈출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오늘 하루’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형기 10년을 채우는 것이다. 그는 기상신호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고 급식을 배당받고 작업장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에 들어간다. 그는 수용소의 그런 ‘하루’란 지극히 만족스런 하루라 여기며 잠자리에 들 때는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란 역설이자 해학이다. 솔제니친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외부의 환경도 사람의 마음만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수용소에 갇혀있는 죄수의 하루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그 하루가 즐겁게 지나감을 역설로 표현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용소 환경을 폭로함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수용소 생활을 고발하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체제가 인간을 얼마나 억압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지를 밝혀준다. 이 소설은 솔제니친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세계2차 대전에 참여해 포병대 고위 장교가 되었으나 1945년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편지가 발각돼 체포되어 8년 동안 감옥과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냈고 이후 추방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미국에서도 한 때 체류했던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상을 받았고 구 소련체제가 붕괴되자 편안한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다하고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금년 90세(1918-2008)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말 요즘 같으면 하루하루가 살 판 난다. 신이 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쌓여지는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어지는 것 같은 하루하루다. 매일 저녁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만 틀만 나오는 올림픽 중계 때문이다. 어느 케이블에선 하루 종일 한국말 중계가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 아니다. 각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이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것 같다.올림픽이 끝나면 어떻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하나. 걱정도 팔자다. 아무렴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자유스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수용소 안에서도 행복감을 누리는 죄수보다야 더 낳아야 되지 않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죽어야만
끝이 나는가 보다. 누군가는 “오늘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 행복을 모르는데 내일 행복이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오늘을 가장 귀하고 값지게 보내야 한다. 욕심 같지만 오늘 하루 8만6,400초, 분초마다 행복감을 느끼는 하루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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