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월 2일을 재미한인의 날로

2008-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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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모(새누리연구소 소장/새누리지 발행인)

금년 9월 2일은 지금부터 125년 전인 1883년 민영익을 대표로 한 한국의 보빙사절 8명이 샌프란시스코의 항만을 통해 미국땅을 처음으로 밟은 날이다. 일행 중엔 미국의 최초 한국 유학생인 유길준도 있었다.

사절들이 미국 아더대통령을 알현하고 모두 돌아갔다면 이 날이 재미한인의 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뜻이 있어 민영익은 총명한 유길준을 미국에 남아 서구문명을 배우도록 하였기에 그들이 이 땅에 도착한 날인 9월 2일은 우리 국내의 한민족이 기념할 ‘재미한인의 날 Korean’s Day’가 된 것이다.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미국정부는 정중하게 환영하였고 미국의 언론들은 대서특필하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유길준이 유학생으로 남아 공부하는 일에 대해서 미국정부는 적극 찬성하며 협조해 주었고 언론들도 그 뜻을 높이 샀다.


이후 한인 유학생이나 망명객과 상인들은 계속하여 미국으로 유입하여 배우고 정착하며 기우는 조국을 위해 구국운동을 이곳에서 전개했다. 1884년에는 갑신정변에서 주역을 하던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이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귀족 출신의 박영효는 곧 일본으로 되돌아 갔으나 서재필과 서광범은 미국에 남아 공부하며 미국 시민권자의 1,2호가 되었다.

10여년 후 서광범은 한말 정부가 그의 역적의 누명을 벗기고 법무대신으로 초빙하여 귀국하였고 서재필은 미국 의사가 되었으며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일시 귀국하여 한국의 개화 민족운동을 전개하며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독립문을 건립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다시 미국으로 온 뒤 그는 재미한인들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이후 수많은 유학생과 망명객들이 미국으로 줄을 이었고 샌프란시스코항을 통해 입국하여 약재상, 인삼상과 소상인으로 활동하던 한인들은 1902년 하와이 이민 전후까지만도 200여명이나 되었다. 이들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정규 이민 노동자 8,000여명의 한인들과 합류하게 되었기에 재미 사회는 더 큰 발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더우기 이민 이전의 애국애족적인 한인 조상들이 미국에서의 유학이나 망명과 애국적인 활동에 대해 미국정부와 언론들은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런 이민 전기의 한인의 역사를 재미한인들이 망각하고 기념하지 못한다면 이는 큰 수치가 될 것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부터라도 재미한인들은 이민으로 온 첫 날인 1903년 1월 13일과 최초 미국땅을 밟고 유학 정착을 시작한 1883년 9월 2일을 ‘재미한인의 날’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요, 역사적인 사명이라 하겠다.2008년 7월, 필자 내외는 1883년 그 날을 회상하며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찾아 그들이 처음 밟
은 부두와 머물렀던 팔레이스 호텔을 방문했다. 마침 아직도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그들이 거닐던 호텔 주변의 도심과 놀라던 호텔 건물 로비, 객실, 레스토랑 등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조상들이 아침을 했을 그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사절들을 되새겼다. 풍전등화와 같은 한말의 사절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고 문명을 배워 난세의 조국을 구하기를 염원했으리라 믿으면서 같은 기원을 또다시 했다.
재미사회나 교회와 종단, 한인들이나 한인단체들이 매해 9월 2일을 ‘한인의 날’로 기리며 다수 종족의 이 땅에서 미국과 한반도, 새누리를 위해 공헌하는 한민족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성장해 가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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