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산 안창호 선생과 광복절

2008-08-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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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봉(도산사상 연구회)

“긴 날이 맞도록 생각하고/깊은 밤 맞도록 생각함은/우리나라로다 우리나라로다” 도산이 지은 노래의 한 귀절이다.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난 광복 63년과 뜻깊은 건국(제헌) 60주년을 맞아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오로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 구한말 아물거리는 그 어둡고 황막한 시대에 도산은 민족의 길을 닦은 분이시다.겨우 21세 때 평남 강서에 우리나라 최초의 남녀공학 점진학교를 세우고 이 학교의 이름을 점진적으로 착실하게 민족을 교육하는 것이 살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도산의 처음 뜻은 정치가가 되려고 생각지 않았다. 미국에 유학 온 것은 교육학을 공부하여 국민을 가르쳐 세계에 자랑스러운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졌다.도산의 꿈대로 교육자가 되었더라면 페스탈로치 처럼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 유리조각과 사금파리(그릇 깨진 작은 조각들)을 호주머니에 주워 담는 실천적 교육자나 미국의 존 듀이처럼 창조적 훌륭한 교육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산은 도미하여 이민 초창기 한인 이민을 위해 길을 닦는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동포들이 청결하게 사는 생활운동을 미국에 일으켰고 대한국민회 전신인 공립협회를 조직해서 노동자의 복지를 옹호하고 최초 한글신문을 발행했으니 동포의 협동생활과 민주주의 생활훈련 청소년 교육에 힘을 썼던 것이다. 그 옛날에 선각적 지도자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1910년 8월 29일 을사침탄조약으로 일본에 강제 합병당하자 충남, 금산 군수 홍범석은 망국의 비보를 듣자 적에게 굴복하기 보다 이 세상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목매어 자살했고 유학자 매천 황현은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도, 바다도 괴로워 흐느낀다. 무궁화 덮힌 나라는 어디 갔단 말인가”4편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다.일제의 강압적 식민지 병탄으로 한국민족이 받은 고통과 손실은 어떻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자주적 근대화는 저지 당했으며 민족문화는 말살당하고 우리 말과 글 뿐 아니라 성명마저 말살 당하였다.

경제적 착취는 극에 달하여 집안에 놋그릇과 숟가락까지 빼앗아 갔고 비행기와 탱크를 만든다고 하여 교회의 종까지 떼어갔다. 인력의 수탈은 남자의 징용, 징발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까지 정신대의 이름으로 일본군의 위안부로 몰아갔다. 실로 수많은 애국지사와 인재들과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여 불구자로 만들었다.일본 제국주의는 오늘날 한국민족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천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을사 침탈에 이어 이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엄연한 우리 땅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며 한국 침략을 하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도산은 묻는다. ‘그대는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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