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 인생론

2008-08-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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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올림픽은 아마추어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프로 선수는 출전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프로들도 참가하여 본래의 올림픽 정신이 혼탁해졌다. 미국의 스포츠는 야구, 농구, 풋볼, 아이스하키의 4대 종목을 중심으로 프로들이 휩쓸고 있다. 물론 그것은 TV의 보급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상업주의의 결과이다. 그래서 운동선수는 연예인처럼 스타로 등장하고 엄청난 보수가 뉴스거리가 된다. 돈과 명예의 추종자가 되는 프로 선수는 스포츠 본래의 정신인 아마추어리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아마추어는 미숙을 뜻하고 프로페셔널은 원숙(圓熟)을 말한다는 개념은 기술사회가 강요한 이해이지만 인생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아마추어로 인생을 마치고 싶다. 프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명성’이다. 이름을 떨치는 것이 나쁠 건 없지만 그것이 목적이 된다면 스포츠 정신에서는 이탈된다. 예술가도 과학자도 종교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마추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선 명성이나 명예심에 턱걸이를 하고 버둥거리는 삶의 태도에서 해방된 생활을 말한다. 스포츠를 상업주의가 명성과 돈의 제물로 만든 것은 슬픈 사실이다. 올림픽 경기장도 한 인간의 생애도 명성이나 돈을 좇는 경주의 마당은 아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자기의 힘을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테스트 해 보는 장소이다.


서울 올림픽 입장식 때 미국 보도진이 약간의 실언을 한 일이있었다. 선수단 댓명이 입장하는 것을 보고 “이 나라는 한 번도 메달을 딴 역사가 없지만 계속 올림픽에 오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메달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프로들은 보수에 목적을 둔다. 그러므로 참가에 목적을 두는 올림픽 정신에는 실격이다. 참가라는 것은 결과보다는 모든 과정에 의미를 둔다. 상을 못 받아도 평소의 훈련을 스스로 테스트하고 자기의 최선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성취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아마추어 정신이다. 인간의 생애도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는 이런 삶을 ‘아마추어 인생’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민을 즐긴다”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미술, 음악, 문학 등 걸작들은 고민의 산물이다. 안일한 작품일수록 졸작을 면치 못한다. 나의 인생도 걸작으로 남기려면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필자도 설교자의 생애를 보냈지만 설교란 참으로 힘든 작업이다. 설교 준비의 과정에서 얼마나 사색하고 고민하였느냐에 따라 좋은 설교의 중량도 결정된다. 평생 말을 하는 직업이니까 단에 서면 무슨 말이든 30분쯤 해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통과하지 않은 설교는 회중의 공감도, 감흥도 일으킬 수 없다. 매 주 이런 고민과 명상의 씨름을 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이지만 뒤를 회고하면 실로 나의 행복은 그런 고뇌의 과정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추어 인생’이라고 내가 말하는 뜻은 고민과 땀의 과정에 참가하는 인생 태도를 가리킨다.

올림픽을 아마추어 정신의 결정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국제적인 우정을 의미한다. 140개국으로부터 모인 인종, 문화, 언어,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우정을 나누는 자리가 올림픽 말고 또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발전을 위하여 경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정을 경쟁보다 한 발자국 앞세우는 태도를 나는 ‘아마추어 인생’이라고 부른다. 싸우고 정복하는 방법으로 행복은 오지 않는다. 개인이나 세계나 우정과 형제애가 수립되지 않는 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 전세계에 고층건물 건립 붐이 한창이다. 특히 돈에 여유가 있는 산유국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뉴욕타임스의 마르틴 고트리브 씨는 고층건물 건립 심리를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경제 과시, 자기 과시, 지방 과시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돈 자랑, 자기 자랑, 집안 자랑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거북이의 생태에 대한 글을 읽었다. 어떤 강압적인 방법으로도 거북이의 목을 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다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거북이를 불 가까이에 놓는 것이다. 온 몸에 따뜻함을 느끼면 거북이는 스스로 머리를 내놓는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정과 형제애의 따뜻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해결이 온다. 우리는 강압적인 통치 방법을 썼던 정권의 역사들을 보아왔다. 그것은 거북이를 냉장고에 넣고 방망이를 들고 목 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 싸움은 백발백중 거북이가 이긴다. 사랑은 결코 어리석은 잠꼬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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