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호연인지기(浩然人之氣)

2008-08-02 (토)
크게 작게
김명욱(논설위원)

한 주에 한 번씩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는 방법이 있다. 돈도 들지 않는다. 무거운 여행가방도 필요 없다. 비행기 표는 아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 스케줄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좋다. 여행에 다녀올 동반자는 있는 것이 좋다. 혼자 갈 수도 있지만 둘이나 혹은 동반자가 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값싼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래도 많지 않은 사람들은 이 여행을 무척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여행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비우게 한다. 건강에도 좋다. 여름에 하는 여행은 땀을 많이 흘리게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피부 속에 있던 좋지 않은 찌꺼기들이 땀으로 빠져나와 건강에 좋고 피부 미용에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여행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오전에 떠나면 두세 시간 내에 다른 나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가까운 나라는 한 시간 내에도 도착한다. 그리고 두 시간에서 다섯 여섯 시간 등 여행지를 둘러보며 여행을 즐긴 다음 돌아올 수 있다. 하루 여행길이니 아침은 집에서 먹고 점심이나 간식거리를 마련하여 출출할 때 먹으면 된다.이 여행을 하면 마음이 비워진다는 뜻은 다른 잡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빡빡한 일정은 아니다. 해병대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처럼 쉴 틈도 별로 없이 여행을 해야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다. 가지고 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여유롭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특히 이 나라는 건강의 비약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 도심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맡을 수 없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해 준다. 어떤 나라는 청정 호수가 반겨주기도 한다. 또 어떤 나라는 깊고 깊은 계곡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며 천년만년 숨겨져 내려온 자연의 태고 적 비밀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루베리는 이 나라에선 돈 안주고 얼마든지 따먹어도 괜찮다.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로만 가도 되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눈길은 모두가 선량한 빛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도 국적에 관계없이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 나라를 들어가는 데는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증’ 따위는 내보일 필요가 없다. 돈 안 들이고 하루면 다녀 올 수 있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산(山)이다. 산은 또 다른 나라다. 산에 오르면 속세의 나라를 떠나 온 듯 새로운 감정을 갖게 하니 “다른 나라”라 부를 수도 있다. 산에 오르는 동안 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심 속 세상 안에 살면서 세파에 찌들어져 욕심으로 절여진 마음을 비우게 해준다. 상처받은 마음과 정신을 산의 정기로 너그럽게 감싸 안아 품어준다.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했던가.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만나는 자리가 산”이라 하는 뜻 아닌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에 사람이 있으니 사람 역시 하늘과 땅의 기를 받을 수 있는 장소중의 하나는 산이 될 수 있다. 나무로 울창한 숲이며 산꼭대기에 있는 맑은 담수의 호수들이 호연지기가 되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반겨 세상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주는 듯하다.

여름철 산에 오르노라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80-9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산이라!” 어떤 사람들은 “미친 짓 아니고 무엇인가”라고도 한다. 그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산은 국경 없는 또 다른 나라임을 모르는 소리다. 5-6일 동안 세파에 찌들어 멍들은 가슴을 밝고 맑게 치유해 줄 수 있는 방법 또한 산행이 됨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겨울산은 겨울산대로 묘한 멋과 정취가 있지만 여름산은 여름산대로의 풍만함과 여유로움이 있다. 앙상한 가지만이 있는 겨울나무를 보다가 잎이 무성한 여름나무를 대할 때의 마음은 풍요로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산 청정 호수엔 비키니만 입고 수영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호연지기와 선녀들과의 만남 같은 황홀함이 호수에는 비친다.

돈 안내고도 갈 수 있는 다른 나라로의 여행인 산행(山行)은 마음을 비우게 하고 몸도 건강하게 만든다. 형편이 가능하다면 한 주 혹은 두 주에 한 번 꼴로 산을 다녀오는 것이 좋다. 산은 정신을 맑고 밝게 하며 시시비비를 초월하게 한다. 산을 오르며 공해 없는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니 심장과 폐가 강해진다. 산을 내려가니 다리가 튼튼해진다.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품어 안게 된다. 그러니 세상 밖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하늘과 땅의 기가 만나는 곳에 사람의 기가 함께하니 호연인지기(浩然人之氣)라 해도 될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