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성시대

2008-08-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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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경성(京城)’이란 단어에 감회가 깊은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성시대’는 특별한 시간적 구분이다. 조선시대의 ‘한성’, 대한민국시대의 ‘서울’ 중간에 낀 ‘경성시대’이며, 경성은 서울의 옛 이름이다. 즉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특별한 시대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소
위 ‘일제시대’ 그러니까 한국의 식민지 시대가 된다. 이 시대의 문화 특징을 KAIST 전봉관 교수는 경성시리즈 5부작으로 연내 완간 예정이라고 한다.

1945년 8월 14일과 8월 15일은 천지가 바뀌었다. 36년 동안 한국을 지배하던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한국은 자유롭게 된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나라이다. 점차 군사력을 강화하더니 감히 아시아의 패권을 쥐려고 하였으니 그 용기가 놀랍다. 조선 후기의 한국 정계도 어지러웠다지만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계획이 치밀하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들은 ‘내선일체’를 부르짖었다. 일본은 ‘내지’이고, 한국의 ‘외지’이지만 한 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였다. 많은 일본인이 한국에 이주하여 한 동네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관공서의 직원이나 학교 교사, 생업 종사자 등의 수효가 늘어날수록 나라 안에 일본색이 짙어졌다.


그들은 일본식 ‘창씨 개명’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시달림을 받은 결과는 나날이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 당시 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은 그들을 조롱하는 이름을 창작하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랬다. ‘고엔 부랑코’ ‘구쓰시다 팡코’가 그 예이다. 앞의 것은 ‘공원의 그네’, 뒤에 것은 ‘양말의 구멍’이라는 뜻인데 말 끝의 ‘코(子)’가 여자 이름에 붙는 것이 일본식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학도병을 모집하여 전쟁터로 보냈다. 당시의 대학생은 전쟁터로 떠나라는 권유에 시달렸다.

남자들은 학도병으로, 여자들은 정신대로 보내려는 그들의 강요는 끈질겼다. 수많은 학도병이 전사하였고, 지옥같은 정신대 체험을 한 몇 분의 생존자는 역사의 그늘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징용되어서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가 희생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어쩌다 생존하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식민지 정책 중에서도 무서운 것은 언어 수탈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얼’을 담고 있기 때
문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학교에서 ‘조선어’를 배운 일이 없다.

‘일본어 상용 시대’에 성장하였다. 한 일본 교사가 예민한 성장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바벨탑’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높이 높이 쌓아올린 탑이 하늘에 닿지 못한 것은 위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일본어 상용’을 이해시키려는 데 어렴풋하게라도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나라의 주권을 잃었던 시대는 철저하게 일본화 된 시대였다. 나라 살림은 그들 머리와 손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우리들도 얻은 것,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나라’의 귀중함이었다. ‘나라 지킴’의 중요성이었다. 온 국민의 희생은 컸지만 학습 효과 역시 큰 것이 있다. 우리는 분발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얻었다.

일본은 한 마디로 염치 없는 나라이다.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하던 일을 대대 손손 기억해야 할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한 욕심을 잊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이 발행 예정인 역사 교과서도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성을 찾기 바랄 뿐이다. 한 때 적이었던 나라들의 희생에 사과한 독일과 달리, 변변한 사과도 없이 ‘유감’이라는 말로 얼버무린 일본이 세계 지도자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매 맞은 사람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때린 사람의 기억은 희미해지는 것인가.

또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북으로 나뉘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생각을 한다. 세계 제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게 되자 전승국들이 모여서 회담을 하였다. 그 결과 1945년 8월 26일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하였다. 같은 해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였다. 이 때부터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정치 체제로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분단 상태이다. 한국이 일본에 속하지 않았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분단된 나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원망하는 데 매달려도 소용이 없다. 꾸준히 통일의 염원을 불태우며 그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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