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실용외교’ 무엇이 문제인가

2008-08-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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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외교분야에서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새 정부의 이른바 「실용외교」가 도마위에 올랐다. 이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미·일·중·러에 특사를 파견하여 4강 외교에 주력했고 취임 후에는 이들 국가를 순방하여 정상회담을 갖는 등 외교관계의 강화를 꾀했다. 이리하여 나타난 실용외교의 방향을 보면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의 강화,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자”는 제의, 중국과는 전략적 동맹관계로 격상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실용외교의 결과는 외교관계의 강화보다는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미간의 쇠고기 협정으로 국내의 반미운동이 절정에 달했고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레임덕 현상과 같은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중국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트집잡고 한국을 무시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가장 심각한 사태는 일본이 교과서 해설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과거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주장했던 독도문제를 일본정부가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므로 매우 도발적 사건이다.


더우기 공교롭게도 이 때 미연방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하여 충격을 주었다. 다행히 한국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따라 일주일만에 「한국 영토」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것은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 부시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국민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외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존립을 유지하는 일인데 이 국가 안위와 나아가서 번영을 지키는 수단이 국방과 외교이다.

국가간의 존립과 패권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합종연횡」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합종이란 “남북을 연합시킨다”는 뜻인데 연나라가 조·한·위·제·초나라를 설득하여 6국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동맹을 맺어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의 동진을 수십년간 저지했다. 연횡이란 “옆으로 이어진다”는 말인데 진나라는 이에 대해 6국과 각각 동맹을 맺어 합종을 깨어버리고 천하통일을 이룩했다. 이것이 바로 외교의 성과였던 것이다.

우리는 1세기 전 외교의 실패로 나라를 잃었다. 한반도의 주변에는 그 당시에도 4강 구도였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다가 일본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때 우리의 외교권부터 찬탈했다. 일본의 지배를 견제할 수 있는 나라로 미국이 있었으나 우리는 미국과 거래할 수 있는 국력이나 외교적 역량이 없었다. 이와 달리 미일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약속해 놓았으니 한일합병은 국제적 양해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또한 외교였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데도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가 없고 사람에 따라 친소관계가 다르듯이 국가간 외교관계도 모든 나라에 똑같이 친할 수 없다. 특히 국가간에는 국익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 나라와 가깝게 되면 본의 아니게 다른 나라와 멀어지게 될 수 있다. 한국의 주변 4강국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 4개국을 모두 똑같이 친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라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국가의 외교를 개인이나 회사의 비즈니스에 비교한다면 거래협상에 해당한다. 연간 얼마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이 서면 그 공장에 필요한 입지조건을 갖춘 지역과 시설규모를 정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공장 규모는 목표가
되고 부지 조건과 시설규모 등은 원칙이 된다. 또 구체적 활동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는 목표와 원칙, 전략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이명박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또 시험대에 올라있지만 외교의 목표, 원칙, 전략에서 볼 때 북한이 남한보다 외교에서는 한 수가 위인 것 같다. 북한은 체제 유지와 더 나아가서는 적화통일이라는 일관된 목표 아래 「통미봉남」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목표와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핵무기, 6자회담, 벼랑끝 전술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남한의 대북정책은 그저 흘러가는대로 따라가는 인상이 짙었고 지금은 더욱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는 경제에서 능률을 올리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방책이다. 그러나 외교에서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주의는 불가능하다. 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고 상대방도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생의 거래를 지혜롭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목표, 원칙, 전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 외교에는 단기적 대책 뿐 아니라 중장기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명박 실용외교가 시련을 겪는 원인은 즉흥적 땜질식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명박 실용외교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4강 외교와 남북관계, 그리고 두고두고 말썽이 될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확고한 외교 설계도에 따라 다양한 전략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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