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의 힘을 아는 나라

2008-07-31 (목)
크게 작게
한영숙(고려연합감리교회 목사)

‘광우병’이라는 거짓말과 ‘검역 주권’이라는 헛소리에 놀아나는 촛불시위대가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들며 한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있는 사이에 ‘독도’를 둘러싼 힘겨운 말들이 비수처럼 한국을 향해 들려오고 있다.

오래동안 한국이 독도를 실재적으로 지배해 왔지만 일본이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지가 한 세기를 넘었다. 게다가 21세기의 초강대국 미국에 의하여 1977년부터 독도는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라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 더 얻었고 마침내 “독도는 주권 미 지정 지역”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온 일본의 집요함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간도를 우리 땅’이라고 후손들에게 전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만약 우리에게 “간도는 우리 땅이다”는 ‘말’이 있었더라면 지금쯤 만주땅은 우리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구약 성경 창세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 민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야곱이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동생처럼 방대한 아랍권 안에서 저들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작은 나라이다.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태어났다고 하는 야곱의 출생 이야기에는 이웃이 아무리 크고 강해도 결코 질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속성이 잘 묘사되어 있다.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인류가 모두 그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거나 패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 한국인들은 야곱의 소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야곱의 소원이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로 성취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작은 자가 큰 자를 기대할 수 있으며,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있다면 힘의 원천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야곱과 에서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창세기는 전한다. 익숙한 사냥꾼이었던 에서가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시장하였을 때에 죽을 쑤고 있던 야곱에게 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birthright)을 바꾸는 이야기가 있다. 죽 한 그릇을 달라고 요구하는 형에게 야곱은 죽을 주는 댓가로 ‘장자의 명분’을 달라고 요구한다. 저들은 상거래를
하듯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사고 팔았다.

야곱은 사냥한 고기를 대가로 요구할 수도 있을 법하지만 전혀 엉뚱한 요구를 한 것이다. 비록 야곱이 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는다고 해도 에서가 장자라는 엄연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에서는 쓸데없는 것을 요구하는 야곱을 어리석게 여겼을 것이다.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을 야곱에게 넘겨주었다..그렇다. 야곱이 선택한 것은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이었다. 야곱은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 말을 선택했다.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에 얽힌 말들, 즉 선택받음, 하나님의 뜻, 사람의 도리, 권리, 의무, 자격, 세상사는 법, 등등...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말들을 야곱은 선택한 것이다. 야곱은 말을 소유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소유를 포기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란 ‘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말을 위해서는 배고픔도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물질적인 풍요를 포기할지언정 말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받아들일 수 없고,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줄 알고, 말이 세상을 다스리는 줄 알고, 말이 나라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줄 알기 때문에 거짓 말이나 헛된 말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말의 힘을 아는 이스라엘이 오늘에 이르러 석유를 지닌 아랍권의 큰 나라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현실은 말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