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빛을 나르는 릴레이

2008-07-28 (월)
크게 작게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육상경기에서 무척 흥미로운 종목이 릴레이다. 이 경기는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인 코린토스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경기 방법은 4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횃불을 들고 달려가 다음 선수에게 전달하는 경주였다. 빨리 달린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횃불을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코린토스 화폐에는 ‘빛을 전달하라’는 국민 표어가 새겨져 있었다. 보다 높은 비전을 국민에게 심으려는 격조 높은 표어이다.

독도의 영유권을 교과서에까지 싣는 일본은 후손들에게 고작 이웃과의 분규를 전달하려는 가련한 역사의식을 고취시켰다. 권력 세습을 60년 동안 보여온 북한도 후손에게 물려줄 릴레이 바통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후세에 어떤 바통을 넘겨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행여 끼리끼리 병이나 황금지상주의나 한탕주의나 이기적 개인주의라는 일그러진 바통을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릴레이 경주자들인데 후세에 어떤 바통을 넘겨줄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며칠 전 미국에 여성 최초의 4성 장군이 탄생하였다. 앤 던우디 장군이다. 그녀는 뉴욕 태생이고 뉴욕주립대학 출신이다. 던우디 장군은 진급 소감에서 “큰 명예로 생각하며 더욱 겸손히 직책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여성과 국민에게 ‘겸손의 바통’을 전달하는 훌륭한 인격자로 여겨진다.

엘리 위젤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이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위젤은 자기의 체험에서 얻은 메시지를 꾸준히 인류에게 전달한 운반자였다. 그 메시지는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이었고 누구나 이 세상의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위젤은 인류가 어떻게 하면 절망 앞에 항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왔다” 엘리 위젤은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으로 16세 때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아버지가 매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였고 수 천의 죄 없는 생명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살아남은 것을 그저 다행스럽게 여기거나 일류 작가가 된 것을 행운으로 즐기거나 유명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을 만족하며 살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악을 고발했고 평화를 외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는 빛의 전달자였다.

지난 주 시드니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유대교인, 모슬렘, 가톨릭 신자, 힌두교인, 불교도들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오늘날 종교가 배타와 균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종교는 화해와 사랑의 촉매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역설하였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바통을 인류 후세에게 전달할 의무를 호소한 것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아카데미상을 받은 불굴의 명작 ‘불을 나르는 수레(Chariots of Fire)’가 생각난다. 1924년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는 두 젊은이를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목적으로 운동 연습에 열중한다. 다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오랫동안 자기 민족이 받아온 상처와 차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하여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였다.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그들 두 젊은이의 승리는 결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승리였다는 것이다. 육(肉)의 나를 영(靈)의 내가 복종시키며 사는 생활이 한 인간을 인생의 챔피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불을 나르는 수레이다. 어떤 불을 나르고 있는지가 결국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요즘 세계의 도시들이 불 밝히기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두운 밤거리일수록 범죄율이 높다는 사실에도 관계되지만 관광산업의 발달로 더욱 더 도시와 건물을 밝고 화려하게 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람들의 사회도 밝아지려면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세상에는 어둠을 만드는 자가 있고, 어둠 속에 안주하는 자가 있으며 빛 속에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자가 있고 빛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빛의 릴레이에 참가하자는 것은 빛을 만들어 후세에 전달하는 자가 되자는 뜻이다.

요한 기자는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한탄하였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이 예수의 중요한 메시지였다. ‘나에게 빛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빛을 후세에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가 생각할 몫이다. 교부 터툴리안이 말했다. “기독교는 처음 300년 동안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전도나 설교의 영향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각자가 세상의 빛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삶과 죽음을 보고 많은 개종자가 생겼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