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기자의 하루를 책임지는 독자 여론~

2008-07-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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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부장대우)

신문사 편집국의 전화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독자들이 알려주는 값진 기사제보에서부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전화, 이미 보도된 기사에 대한 추가 질문이나 감사의 전화, 때론 항의 전화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늘 전화선을 타고 편집국으로 흘러들어온다.

어쩌다 민감한 내용의 기사라도 보도되는 날이면 독자들은 ‘옳다’ ‘그르다’ 또는 ‘백배 동감’ ‘완전 반대‘로 찬반의견이 둘로 나뉘면서 편집국 전화통에도 덩달아 불이 난다. 정작 보도된 기사내용에 거론된 당사자도 아니면서 기사 때문에 공연한 피해를 봤다며 신문사가 책임을 지라고 생떼를 쓰는 독자들도 더러 있다.


얼마 전 기자가 쓴 ‘불경기로 비자금 챙기는 한인 부부들이 는다’는 기사를 읽고 대판 부부싸움을 했다며 투덜대던 독자들도 꽤 있었다. 약식 설문조사 형태를 빌리긴 했지만 기혼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했고 딴 주머니 차는 남편들의 사례도 다뤘건만 아내들만 괜한 오해를 받았다는 불평 일색이었다. 한 독자는 미주한인 기혼여성을 대표한다는 한 인터넷에서 기사가 왜곡 전달돼 회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귀띔해줬고 또 다른 독자는 갈라진 부부사이를 책임지라며 기자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편집국 전화선은 이처럼 독자들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여러 사연을 접하다보면 때로 기자들이 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일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한국의 MBC-TV가 방송했던 ‘스포트라이트’에서처럼 실제로 기자가 납치되거나 위험에 처하는 일은 비록 이곳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의 언어폭행에 시달리는 일은 다반사다. ‘밤길 조심해라’ ‘편집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 ‘얼마나 잘 되나 두고 보자’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멘트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편집국이다.

처음에는 점잖게 얘기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혼자 흥분해서는 ‘야~’ ‘너~’ 등 반말에서부터 심한 욕설을 퍼붓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자들이 소송을 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독자들이 기사를 제대로 끝까지 꼼꼼히 읽지 않고 때론 제목만 보고, 아니
면 기사 앞의 몇 문장 또는 눈에 띄는 부분만 달랑 읽고는 흥분해서 전화 다이얼을 돌리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늘 부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교육기자로 근무한 덕에 그간 보도된 교육기사로 많은 정보를 얻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는데 큰 힘이 됐다는 격려전화를 받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지난 수년간 기자가 쓴 교육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보관하고 있다는 한 독자는 기사 덕분에 딸아이가 올 가을 하버드대학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과찬을 하기도 했다. 좋든 싫든, 이유야 어찌됐든 독자들이 기사에 반응을 보일 때 기자들은 불끈 힘이 솟는다. 기사 한 줄, 한 마디가 갖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 것인 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고르고 또 골라서 읽기 쉽게 다듬어 지면에 싣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기자들의 마음을 독자들이 조금은 헤아려주면 좋겠다. 또한 이러한 독자들의 비판과 칭찬, 격려가 편집국 취재기자들의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임도 기억해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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