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을→어떻게

2008-07-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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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지금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 옆에 서 있다. 그는 바위에 앉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의 얼굴 표정, 몸의 각 부분은 그가 생각 중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사람의 일생, 하고 싶은 일, 아니면 가족, 연인, 친구…

이 작품의 우수성보다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조각이 생각하고 있을 그 내용이다. 그것이 어쩌면 로댕의 생각일 지도 모르니까.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였다. 자연 중에서도 아주 연약한 갈대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이다. 이어서 ‘내가 몇 개의 지구를 소유하더라도 이 이상의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우주는 공간으로 내 자신을 표함하고, 하나의 점으로 나를 삼킨다. 나는 사고하는 것으로 우주를 포함한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우리의 모든 높고 엄숙함이 사고력 안에 있다고 보았다.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는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식물인간이 되면 이미 사람의 세계를 떠났다고 애석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이 사고력은 DNA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학습에 따라서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또다시 선천적인 것과 교육의 효과를 따지는 근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론은 성과의 속도에 차이가 있을 지라도 반복되는 학습으로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게 된다.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생각하기를 즐기는 A 부류와, 생각하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B 부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고나서 제멋대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풍부한 상상가가 나오는가 하면, 이야기의 줄거리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학생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보는 학생과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로만 듣는 학생이 있다. 교사의 질문에 기억을 바탕으로 대답을 하는 학생과 자기 자신만의 개성적인 대답을 하는 학생이 있다.

이전의 교육은 학생의 기억력을 키우고 그들의 생각을 어떤 틀 속에 가뒀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교육이 창조적인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면 청소년을 에워싸고 있는 성인들의 질문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즉 ‘무엇’을 묻는 빈도보다 ‘어떻게’를 묻는 빈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책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지?’라는 일차적인 질문을 넘어서 ‘어떻게 느꼈어?’라고 묻는 것이다. ‘무엇이 나쁘지?’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하고 묻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청소년들을 생각하기 좋아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을 낳고, 그것은 창조적인 사고의 바탕이 된다.

21세기, 즉 차세대의 활동무대는 사고력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세상 발달에 기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신화가 여기 저기서 붐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의 생각이 더 많은 생각을 낳고 그것이 현실화되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얼마 전에 보도된 서울대와 하버드대 학생의 독서 경향에 흥미를 느꼈다. 그 도서 목록에 따르면 서울대 학생들은 넓게 각국 소설류를 읽고 있었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고전을 읽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으며, 거기에 ‘생각의 탄생’이란 책이 섞여 있었다. 이 책은 1999년에 나왔고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지만, 시류에 맞는 보석같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 내용에 등장하는 세계의 천재들이 어떻게 영감을 얻었고, 어떻게 창조력으로 발전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았는지 알려 준다. 이는 독자의 사고력을 자극하고 있다. 왜 하버드대 학생들은 이 책을 선택하였으며,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우리의 청소년들을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여기에는 사고력도 키울 수 있다는 믿음과, 이것을 돕는 일은 주위에 있는 성인들의 몫임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일이 된다.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양하다는 말의 뜻을 실감한다. 생김새, 몸짓, 감정, 생각 등이 비슷하지
만 똑같지는 않다. 한 마디로 다양하다. 이 다양성이 인류문화 발달에 공헌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사고력이 그렇다. 냇가에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는 갈대들이 외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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