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로 푸드 운동(Slow Food Movement)

2008-07-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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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며칠 전 대형 수퍼마켓에 들렀는데 넓은 주차장은 빈 자리가 없었다. 빈 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 트렁크에 식료품을 옮겨 담고 있는 자동차를 발견하고 그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중년 부부로 십대의 두 아이를 둔 핵가족이다. 300파운드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부부가 냉동 피자, 수퍼사이즈 비프 스테이크, 냉동 치킨, 감자튀김 등을 짐칸에 가득히 채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미국은 패스트푸드(Fast Food Nation) 제국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한편 오늘의 현대인들은 기업화된 대규모 식료품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내는 가공음식을 먹어 치우라고 강요당하는 비정한 현실의 희생양이 아닌가? 그들이 먹고 마시고 버리는 탄산음료수 병, 일회용 봉지, 접시, 컵, 식품용기 등의 썩지 않는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치솟는 기름값, 주식시장의 폭락, 식량부족 등 세계 대공황의 시작은 1929년 말에 시작된 미국 대공황과 유사하다는 말들을 한다.그러나 자동차의 물결과 가득히 실어나르는 장바구니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위기감을 느낄 수가 없다. 높은 열량과 과도한 지방 섭취로 비게덩어리만 쌓이는 오늘의 현대인들의 몸집과 1930년대 장기간 불황을 겪었던 시대의 몸집과는 얼마나 다를까?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늪에 빠져있을 때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이 찍은 그 유명한 사진 ‘유민 어머니(Migrant Mother)’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 농장에 품팔이로 연명하는 떠돌이 노동자들 가족의 한 사람이다. 30대 여인인 사진의 주인공은 천막 안에서 아이를 안고 배급권을 기다리고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삶의 뿌리를 잃은 상실감으로 극도로 지쳐 보이는 얼굴이다. 그러나 깡마른 얼굴에 두드러진 광대뼈와 턱, 그리고 꽉 다문 입술은 굶주림을 극복해야 하는 모성애와 강인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 사진은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행정부의 사회보장정책의 도움을 기다리는 빈곤층을 대변하는 웅변보다 더 강하고 절박한 메시지였다.
그 당시 대공황의 얼굴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사진으로 빠른 경기부양책을 펴게 된다. 끼니를 연명하기조차 힘들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은 패스트푸드가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천국에서 사는 오늘의 현대인처럼 살과 비게와 벌이는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슬로푸드 운동(Slow Food Movement)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칼로 피트리니( Carlo Perini)가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를 밀어내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
다.

패스트푸드는 전통 음식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폭력이라고 선언하고 말 그대로 천천히 만들어진 음식을 먹자는, 고유한 전통음식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천천히 미각을 살리며 먹으며 삶의 질을 높이자는 웰빙의 열풍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는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중 등의 질병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간편한 음식문화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중독된 음식이다.

나도 한 번쯤은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며 천천히 먹는 음식 운동에 참여해 보고 싶다. 이번 주말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개운한 멸치국에 손으로 뜯어 넣어 수제비 국수를 만들어 보자. 게다가 뒷마당에 심은 애호박,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토속적인 맛으로 별미일 것이다.만약 친구가 방문하면 같이 나누어 먹는 일품요리 대접이 되지 않겠는가? 이미 만들어 놓은
냉동 수제비와는 다를 것이다.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대규모 기업농이 재배한 야채나 냉동음식보다는 살아서 숨쉬는 무공해 음식으로 바꾸자는 뜨거운 열풍도 불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냉동음식을 몇 분 안에 데워서 먹거나 주문하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최고 속도의 빠른 음식문화를 복고풍의 느린 여유의 음식문화로 바꾸는 것이 현대인들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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