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장춘몽의 정치는 안된다

2008-07-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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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전 하버그룹 수석부사장)

한국이나 미국이나 새로 들어서는 대통령은 자기의 취임 후 첫 100일 동안에 해놓은 치적(?)을 자랑스럽게 자찬하는 것이 거의 상례로 되어 왔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당당하게 당선되었던 MB는 취임하고 100일이 지났어도 이런 저런 할 말이 없었던 것은 고사하고 그의 지지도는 역사에 없었던 한 자리 수로 곤두박질하고 말았다.

100일이 지나고 우리 머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몇 가지 희귀한 단어 뿐이었다. ‘고소영’ ‘강부자’ ‘best of best’… 그 유명했던 인수위원회부터 시작해서 청와대 수석진과 내각들을 들여놓을 때 전문성과 역량 위주의 실용인사를 우리는 기대했지만 도덕성도 결핍하고 부패해 있는 사람들, 아니면 권력 주변이나 기웃거리는 인사들을 기용했을 뿐더러 그 중에 열 두어명은 법을 어기거나 아니면 편법과 부정으로 치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여론과 언론이 시끄러워지고 규탄의 목소리가 거세지는데도 그들끼리는 아방궁을 차려놓고 태평성세라도 할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 다물고 있었다. 시민들이 쇠고기 재협정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되었던 국민의 시위가 ‘인터넷 정치’ ‘광장정치’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인해 그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하자 총리부터 시작, 청와대 수석진과 각료도 대폭 개편한다고 했고 쇠고기 협정을 잘못 체결했다고 사과하지 않았던가.
국민이 MB와 그의 정부를 규탄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이 이루려 했던 꿈은 100일도 못되어서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이 거세게 저항하고 나오자 청와대와 내각을 대폭 개편하되, 소위 ‘고소영’이나 몇 십억씩 돈 있는 사람은 안 쓸 것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쓰겠다고 하며, 우선 청와대를 먼저 개편하고 나서 변해가는 형세나 눈치보기 작전으로 끌어오다가 기어코 경제를 핑계삼아 개각은 아주 소폭으로 단행한 듯 싶다.부정으로 축재하고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했는데도 아직도 청와대와 내각에서 숨죽이고 붙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청렴해야 하고, 있는 사람은 부정을 했
어도 이미 들어와 있으니 그냥 두자는 식의 궤변은 이율배반되는 원칙이고 오히려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쇠고기 협정만이 그 이유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해일 것이다. 국민이 MB와 그의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는 원인이 더 크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된다. MB 정부는 큰마음 먹고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 앞이 깨끗할 때 누구 앞에서도 당당히 큰 소리 치며 바른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의 신임을 얻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심장부가 몇 달씩이나 완전히 마비되어 무정부상태에 놓여있고 전국의 주요 도시들도 곳곳이 수라장으로 변한 것은 오직 MB정부의 책임이다. 국가의 공권력을 포기하였기에 반정부, 반체제의 구호가 서울의 하늘을 찌르고 있고 “MB Out”이란 정권을 타도라도 하겠다는 듯한 구호마저 아무렇지 않은 듯 부르짖는 것은 무엇인가 석연치 못하다. 정권을 바꾸어라도 보겠다는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은 듯 싶다. 평화적인 시위는 누구도 시시비비 않겠지만 파괴와 폭력은 용납해서는 안된다. 마치 폭도들이 날뛰는 듯한 광경, 6.25전쟁이 지나고 격동기에 있었던 그 잊지못하던 광경들, 붉은 색의 물결을 다시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과실이고 책임이다. 이대통령은 자기가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만을 바라지 말고 오늘의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당면한 사태를 단호히 수습해야 한다. 위기 모면의 수습이 아니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수습을 해야 할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는 오히려 국민을 우롱할 뿐이다. 다시는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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