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름다운 퇴장

2008-07-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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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이 세계적 강국이 되는 데는 그 근간에 청교도 정신이 있지만 이면에 돈을 많이 번 부호들의 사회 환원 정신도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돈을 벌면 반드시 사회에 되돌리는 기업정신을 갖고 있다. 교육과 문화발전을 위해 학교 및 장학재단, 문화 박물관 설립, 혹은 문화재단 지원, 그리고 국가의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기부금 기탁 등 이들이 사회를 위해 실천하는 기부 및 자선사업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렵다. 이들은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사회를 위해서 기여하거나 공헌하는 일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활발하게 공익사업을 펼친다. 이것은 이들이 최소한 가져야 할 기업인의 윤리와 도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최고 부호 억만장자 데이비드 코크도 최근 링컨센터에 1억 달러를 기부키로 했다는 보도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기업윤리는 코크뿐만 아니라 이미 석유재벌 록펠러,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 자동차 왕 포드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왕 빌 게이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등 수많은 부호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과 같은 ‘부자들의 나눔 정신’은 활발한 ‘기부문화의 씨앗’으로 잉태돼 미국사회 전반에 기부문화를 꽃 피우고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대부분 부자로 죽는 것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에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일생동안 번 돈을 자선재단에 넘기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생을 아름답게 장식하려 한다.

인디애나 대학의 기부센터 조사에 의하면 지난 2006년도를 기준으로 미국국민들은 GNP(국내 총생산)의 1%를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이 낸 기부금은 전체 기부금액의 83.6%를 차지하고 있고, 재단은 11.6%, 기업은 4.8%의 순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100만 달러 이상 소유한 부자들의 기부 및 모금 참여율은 98%나 된다고 한다. 거의 의무적인 수치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돈을 가진 사람들이 기부문화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현실과 달리 우리나라 재벌의 풍토는 어떠한가.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 원을 구형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기업가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누구보다 공을 많이 세운 재벌회장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럽다.한국의 삼성 기업은 사실 TV, 셀폰, IT산업 등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큼 대외적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그동안 이룬 경제적 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민 온 우리들도 현대차가 미국에서 씽씽 달리는 것이나 삼성의 전자제품이나 IT제품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걸 보면 가슴이 너무나 뿌듯하고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갖곤 한다.

그런 기업의 회장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긴 커녕, 지탄을 받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착잡하다.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된다더니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기업으로 자리 잡은 재벌의 회장이 무엇이 부족하기에 더 큰 욕심으로 탈세, 세습운영 등을 하려고 했는지 측은하기 짝이 없다.

무소유가 행복이고 진정한 부자는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번 돈 중 일부를 환원해야 된다는 기업가의 윤리정신을 왜 그는 몰랐을까. 돈만 모을 줄 알았지 ‘욕심이 과하면 죄를 낳고 죄는 곧 사망을 낳는다’는 만고의 진리도 몰랐다는 말인가. 가진 자들의 욕심은 결국 기부에 대한 서민들의 관심을 앗아가 한국의 국민들은 기부문화에 매우 인식해 심지어 돈을 번 사람까지도 환원이라는 단어를 실천할 줄 모른다. 물론 서민들 중에도 이따금 사회를 놀라게 할 정도로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고 죽는 아름다운 한국인들도 가끔 있긴 하다.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번 돈을 남을 위해 보람있게 쓸 때 빛이 나는 법이다. 재벌의 모습이 아름다운가, 추한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미국의 부호와 세금까지 피하면서 부를 축적하다 법정에 서게 된 한국의 재벌회장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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