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 손해가 주는 의미

2008-07-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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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회계사)

대학 동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자기 아이에게 사회생활의 가장 간단한 법칙으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10% 정도만 손해보는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친구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라고 한다. 참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라 나도 늘 그 말을 기억한다.

한국을 방문하였다. 물질이 모든 가치 기준의 척도가 되는 사회가 된 것 같다. 그 가치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곳도 많으리라 믿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회는 인간관계, 자존감 등이 물질에 의해 거의 정해지는 것을 본다.
최소한 10% 정도는 이익을 보아야 만족한다.
무엇인가 추가로 얻어야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 것 같다. 물질을 추구하고,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소위 본성이라고 불리는 것일 것이다. 그 본성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는 것을 본다.


어떤 죄의식이라든가 자책감, 사회에의 책임의식들이 많이 결여됨을 본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어떤 도덕적인 기준은 한계선이 없이 무너져내린 것도 본다.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은 물질이다. 물질만능주의와 물질을 거의 신성화하는 것 같이 보인다.물론 일부일 것이지만 그런 사상이 중산층, 상류층, 사회 각층에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어떤 사회적 정의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고 그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는 사람에게 문화적 차이까지 느낀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10% 손해를 보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10% 손해를 보고 살아온 친구들은 그 사회에서도 자신의 길을 행복하게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업상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고, 그의 대가를 다시 받는 그런 사업성의 기술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시간을, 물질을 10%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더 크게 펼쳐져 있음을 본다. 악착같이 최소한 10% 이상을 더 가지려고 한 사람들은 결국 100% 이상을 손해본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손해는 즉각적으로 혹은 눈에 보이지 않게 시간을 두고 적용된다.스스로 약은 사람은 제 꾀에 제가 넘어지는 것이다.

물질이 더욱 더 숭상되어 가는 사회, 그 속에서 10%의 손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더욱 큰 빛을 낸다. 그 마음은 사회도 바꾼다. 손해보고자 하는 그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100% 이상의 이익이 돌아오게 한다.일확천금을 바라보며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삶과 성공의 계단들을 뛰어넘어 오르려는 사람들, 그들은 무너져내리는 그 부실한 계단으로 인하여 결국은 바닥으로 버려짐을 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 자신의 삶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의 삶에 연결되는 삶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은 자신의 자녀일 수도, 형제일 수도, 그가 속한 단체 또는 국가일 수도 있다.조금씩 뒤를 보고 조금씩 손해보는, 그 손해는 결국 오르는 계단을 단단히 채우는 역할을 감당한다.한국의 빠른 변화 속에 무너지는 우리 고유의 정신, 서양의 그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정 깊은 그것이 무너짐을 보는 것은과장일까?

다지면서 발전하는 그런 조국을 보고 싶은 심정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이 사회,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10% 손해보는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하나님이 10%의 소득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의미는 우리에게 100%를 더해주시기 위함임을 세상 삶에서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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