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상과 본질

2008-07-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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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의사는 병을 고치기 위해 환자의 여러가지 증세를 살펴보고 물어보고 짚어보고 각종 검사를 한 다음 병을 진단하고 처방한다. 이 때 환자의 증세는 ‘현상’이고 진단으로 밝혀낸 질병이 ‘본질’이다.몸에 열이 있다고 덮어놓고 해열제를 쓴다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감기에도 열이 나고 급성 염증에도 열이 나며 폐결핵에 걸려도 열이 높아질 수 있다.

본질과 현상은 사물의 서로 다른 측면 -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의 본질은 만유인력이듯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야 보편적 진실을 얻을 수 있고 사회 정치현상에서도 본질을 장악해야 해법이 나온다.
미국의 부시정부는 북한의 핵무장 시도라는 ‘현상’에 대해 “악의 축인 깡패나라의 악행”이란 네오콘적 시각에서 덮어놓고 압박하는 강수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가 실패하였다. 사태를 악화시켜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오랜 난항 끝에 “북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을 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50년 넘게 지속되어온 북-미 긴장을 풀겠다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자 양자는 9.19선언 등 해법을 찾아내고 지금 종국적 비핵화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한국에서 두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촛불시위가 지난 5일 피크를 넘기고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광우병 위험이 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개방조치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은 재협상으로 검역 주권을 되찾고 국민건강을 지켜달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부는 재협상 불가 원칙 아래 사태의 본질에 따른 해법을 찾는 대신 공권력을 동원하여 덮어놓고 현상 타개의 강수만 쓰고 있으니 촛불은 꺼질 것 같지 않다.

집권 4개월의 신생 이명박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이 촛불시위를 끝장내고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문제의 본질을 찾아 옳은 처방을 내리면 된다.무엇이 본질인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검역주권까지 내주면서 미국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이익을 서둘러 내던진 굴욕협상 결과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지적. 이른바 고
소영, 강부자라 불리워지는 부자 측근 내각 구성에 대한 반감, 친기업정책, 공기업과 국민의료보험 민영화 시도, 공교육 황폐화 정책, 방송 장악 음모 등등 반대세력들의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들은 다양하다.

한미동맹 강화를 제일의 국정과제로 삼고 밀고 나가는 새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전임자들이 일궈놓은 민족화해, 남북협력 기조를 허물고 대미 사대외교의 첫번째 선물로 이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함으로서 국민 건강을 제물로 삼은 것이라고 촛불시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사대주의의 속성 가운데에는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고 제물로 바치는 자기 부정, 자기 비하의 못난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재협상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한사코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지난 날의 독재자들과 달리 정통성 있는 새 정부의 이명박 대통령이 비굴한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경제강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자주권과 나라 이익을 지키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위엄과 믿음을 보여줄 때 촛불은 완전히 꺼질 것이다.부시대통령은 모욕적 외교 결례를 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도 욕설을 거두고 대화의 마당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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