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라앉는 역사

2008-07-14 (월)
크게 작게
이철수(목사/크리스찬문학교실)

우리는 얼마 전 유럽을 떠나 뉴욕으로 오던 큰 배가 대서양에 가라앉는 영화를 보고 흥분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누가 출연했었는지, 무슨 장면이 멋있었고 무슨 멜로디가 귓가에 남았는지, 지금 그런 얘기를 할 기분도 아니고 처지도 아니다.다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그 거대한 배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마지막 장면의 잔영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의 역사와 시대상을 역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떠오르는 시간과 역사가 있다면 중심에 머무는 시간이 있고,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시간이 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던 그 거대한 배의 잔영은 무수한 익사체와 더불어 이 가라앉는 시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지금 지구촌의 전체적인 모습은 떠오르는 시간의 밝은 표정이라기 보다는 중천(中天)을 지나 석양의 나른함이 팽배해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가는 계속 발목을 잡고, 공사현장엔 삽소리,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국내, 국외의 제 조건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만 모든 잘못을 돌린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건 이런 암울한 상황을 쉽사리 헤치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문제는 국민들의 시국 의식이다.지금은 몇 시이며 어떻게 하면 파국을 막고 다시 한 번 일어서느냐 하는 국민적 합의의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과거 IMF 때, 금덩어리를 든 백성들의 행렬은 국가 위기를 타개하려는 국민적 몸부림의 한 모습으로 외국에도 소개된 바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선 시급한 민생 경제의 불부터 꺼보자는 화급한 현실의식은 커녕, 저마다 일정한 간격만을 유지한 채 갑론을박만 일삼고 있다. 지금은 당리 당략을 논할 때가 아니다. 친박 친이는 또 무엇인가.진정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다면 우선 머리를 맞대고 가라앉는 백성들의 핍진한 생활고를 해결할 방책을 구해야 한다.

지구촌의 식량위기를 만나 이 방면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 부지런히 모임을 갖고 갖가지 방안을 모색중에 있지 아니한가. 지난 주는 동경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러니 이제 촛불시위는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은가. 지금은 쇠고기 타령 할 때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계를 위해 중지(衆智)를 모으는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으면 정부는 그들을 엄벌할 국법의 엄연함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1,2년 더 지속된다면 나라 전체는 혼돈에 빠질 가망성이 벌써 짙게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속에 준법정신은 커녕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뒷전이다.아, 우리는 지금 얼마만큼 가라앉고 있는 것일까. 그 가라앉음의 끝은 무엇일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