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토피아를 생각한다

2008-07-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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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흐뭇한 이야기를 읽었다. 알렉산드리아 시에 사는 클리브랜드 워커라는 신사가 고등학교 청소부로 들어가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생이다. 노동직에 종사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청소년들의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후 젊은이들 사회에 들어가 작은 유토피아(이상향)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의 꿈이며 고등학교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직종이 없기 때문에 결국 청소부를 자원한 것이다. 학생들 사이의 인기는 어느 교사보다도 높다고 한다. 그는 시간 나는대로 학생들과 함께 놀고 상담도 하고 학교 주변에서 배회하고 있는 아이들을 붙잡아 설득해서 교실로 들여보내는 일도 한다. 그는 문제아들의 아버지요, 진짜 상담자가
된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가까워지고 있다. 올림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폐회식 마지막 순간이다. 선수들이 함성을 올리며 서로 껴안고 재회를 기약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저것이 바로 올림픽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 거기에는 흑인도 백인도 황색인종도 없다. 부자도 가난한 배경도, 국적도 남녀의 차이도 없다. 대학 출신도 초등학교 졸업생도, 언어와 문화와 종교의 차이도 없다. 거기에는 오직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과 춤추는 인간과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파라다이스(낙원), 유토피아, 천국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유토피아를 생각한다.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위시해서 플라톤의 ‘공화국’,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시’ 등 문학, 철학, 신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이상향을 그렸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가 함께 풀을 뜯고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젖 뗀 아이가 살모사의 구멍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공존과 우애와 천적까지 사라지는 평화의 동산이다. 그대는 이상향을 어떻게 꿈꾸는가?

나는 이상향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곳은 언제나 청명한 날씨이다. 변덕꾸러기도 없고 깜짝쇼도 없고 중대발표도 없는 곳이다. 나를 흔드는 자가 없어 무중력 상태를 느낀다. 그곳의 음악은 모두 3박자인데 첫 박자는 착한 생각, 둘째 박자는 친절한 말, 셋째 박자는 사랑의 행실이다. 그 곳에도 올림픽이 있는데 수상자는 아이들 뿐이다. 왜냐하면 금메달은 순진한 마음에게, 은메달은 의지하고 믿는 마음에게, 동메달은 단순한 생각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조미료가 필요 없다. 각자가 소금이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거울이 필요 없다. 치장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슬픔의 눈물은 없고 기쁨의 눈물만이 있는 곳이다. 경쟁하는 사람은 없고 칭찬하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싸우기 좋아하는 자는 눈을 부비고 찾아도 만날 수 없는 곳이다. 그곳 비자는 아래와 같은 일곱 종류의 인간에게는 발행이 되지 않는다. 욕심쟁이, 거만한 자, 오기로 살아온 자, 화 잘 내는 자, 줄곧 부러워하는 자, 거짓말쟁이, 뜯어 내리는 자이다.지금 모로코 사피 시에서는 특별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15세기에 스페인에서 도망쳐 온 유대인 래바이(유대교 성직자) 아브라함 미러를 추모하는 행사이다. 모로코는 아마도 유대인과 모슬렘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회교도 나라일 것이다. 이번 축제에 출연하는 취주악단은 유대인과 모슬렘 음악인을 절반씩으로 구성하였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의 유대인 400명의 순례자가 참가하였으며 이 유대인 행사에 현지 주지사를 위시한 모로코 고위 인사들이 동참하였다. 그들은 “우주의 신은 유일하시다. 그가 좌정하시니 모두 일어서서 경배하자”는 찬송을 히브리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불렀다.

모로코에는 유대인 4,000명이 있고 인종차별이나 적대감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유토피아는 나와 다른 자를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이룩될 수 없다.우리가 이민와서 살고 있는 새 땅 미국은 개방되고 누구나 자기의 문화와 전통과 종교를 유지하면서 남을 간섭하지 않는 자유의 나라이다.

. 내가 내 것을 소중히 여기듯 남의 것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살 자유 시민의 특색이 사라진다. 미국인이 함께 꿈구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종, 문화, 문화 신조를 극복해 나가며 평화로운 화음을 잘 이루느냐 하는데 달려있다. 미국 사회를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고 부른다. 양배추, 오이, 당근, 양파 등 여러 종류의 채소가 각자 자기의 맛과 색깔을 유지하면서 전체가 만드는 새롭고 더 고차원의 맛을 창출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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