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존심 vs 탈북자

2008-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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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최신 의료기술과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은 마지막으로 호스피스에서 돌보아 주고 있다. 간호사들도 흰 가운보다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옷을 입고 얼굴에도 짙은 화장을 한다. 환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얼마 안 있으면 지구를 하직해야만 할 가냘픈 환자들에게 꼭 지켜야 할 중요한 룰이 하나 있다. 인간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프라이드만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숨을 거두기 바로 전까지도, 아니 비록 숨을 거둔 후에라도 영원히.

아무리 생활에 쪼들려도 자존심 하나만을 버팀목 삼고 꿋꿋이 한평생을 살아온 이들도 많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처럼 자존심을 함부로 상하게 하면 상상 못할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다.게오르규의 25시에 나오는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는 며칠동안 굶긴 다음에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빵을 하나씩 지급한다.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간 곳 없고 동물적인 본능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새벽 동 틀 무렵부터 남미에서 온 젊은이들이 일용할 양식 하루 일거리를 찾아 길가에 서있다. 지나가는 내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혹시나 불러주지 않나 하는 안타까운 눈빛이다. 둥지를 떠난 새들이 얼마나 오래 날을 수 있을까. 고향을 등진 것도 서러운데 배고파 오갈 데 없이 유리방황하는 나그네의 서러움은 오죽할까.“북간도 간다는 사람을 보시요. 아기는 업고요 바가진 차고요 달구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가기만 히네. 가기만 히네. 아 아 불쌍한 백성”해방 전 먹이를 찾아 자유를 찾아 살얼음 에이던 추운 만주지방으로 이민가던 때의 노래다. 지독한 일본 순경들도 이 불쌍한 사람들을 색출해서 되돌려 보내는 인간 이하의 짐승만도 못한
짓은 하지 않았다.

중국 공안을 피해, 맹수들의 위협을 받아가며 월남의 정글 속에 숨어 지내거나, 몽고사막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여 탈진상태에 빠져있는 탈북자들.쿠바는 경제적인 망명보다는 정치적인 망명이 더 많았다. 이민자들 중 이들은 IQ가 비교적 높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잡아 카스트로에게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

브루클린은 소련에서 들어온 이민자들로 붐빈다. 이민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거의 소련 영토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도 이들을 잡아다 소련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 2차대전 후 유고를 통합했던 Tito 원수는 나라를 떠날 사람들은 자유롭게 나가게 하고 들어오는 자들만 제한했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가도 공산주의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모두가 돈, 돈, 돈벌이에만 들떠 있다.

예전에는 절을 떠나겠다는 중들도 다 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집을 나가겠다는 하인들에게까지도 후한 대접을 해서 내보냈던 미풍양속이 있었다. 짐승들도 밤이면 먹이를 찾아 헤맨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간절한 몸부림침을 어느 누가 감히 막을 수 있을까.공자가 그토록 부르짖던 인의예지는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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