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소년은 어리지 않다

2008-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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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SEKA 사무국장)

사람의 ‘아동기(childhood)’는 11살에 끝난다는 연구가 있다. 영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18세 이하 자녀를 둔 1,17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12살이면 자녀들을 청소년(young adult)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어른 미디어와 문화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어서 빠르게 ‘조숙’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 청소년기는 언제 끝나는 걸까?

문화권과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8세 정도가 청소년기의 상한선이다. 한국의 청소년 보호법은 19세 이하를 청소년으로 본다. 미국에서도 투표권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성인 권리를 18세 이상이면 가질 수 있다.
12세부터 18세까지를 청소년기로 볼 수 있다는 학계·출판계·법조계의 주장은 중고교 시절을 청소년기로 보는 일반 상식에도 부합된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보는 시각은 사뭇 다양하다. 특히 통시적인 청소년 견해는 상전벽해다. 요즘 어른들은 청소년을 ‘어리게만’ 보는 경향이 있다. 또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믿는 게 보통이다. 이미 일반화된 견해이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청소년들
의 잠재력을 크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으로 우려된다.


청소년기를 ‘공부만 하면 되는’ 시기로 보는 것은 사실 최근 일이다. 학교를 통한 보통 교육이 일반화된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공부는 ‘심신 수련’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때의 공부는 곧 킁푸(功夫)였다. 공부의 뜻은 그 후로 축소에 축소를 거듭해 ‘입시준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밖의 모든 의미있는 심신수련 활동은 ‘공부 안하고 노는 일’이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청소년기를 어리게만 보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12~18세 연령층은 불과 두어 세대 전만해도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가 15세가 되면 관례(冠禮)를 치렀다. 관례란
성인식을 가리키므로 15세부터는 어른 대접을 해주었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성인식은 더 빠르다. 지금도 바 미츠바(남자)는 13살, 바트 미츠바(여자)는 12살에 시행된다.

한국의 고전 로맨스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뜨겁고도 애절한 사랑을 맺은 게 16살 때다. 이팔청춘이라는 말이 유래한 것도 바로 이 작품이다. 세익스피어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줄리엣의 나이는 2주일 모자라는 14살이었고 로미오는 그보다 한 두살 더 많았을 정도다. 중국 ‘삼국지’ 서두의 낙양선 장면에서 황건적을 진압하고 천하를 바로 잡겠다고 결심하던 유비의 나이가 15세다.우리 청소년 관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을 너무 어리게만 보는 게 아닐까? 그것으로 지나친 보호막을 정당화하는 것이나 아닐까? 아이들에게 권하는 공부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미래를 핑계로 우리의 자존심이나 만족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을 어리게만 보지 말자. 후세에 남을 사랑을 나눌 수도 있고, 치국평천하를 다짐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좁은 공부만 강요하지 말자. 심신을 고루 수련해 뜻깊은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자. 기성세대가 만든 틀에 갇혀버리기에는 우리 아이들의 꿈이 너무도 크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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