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희망의 꽃 활짝 필 때

2008-07-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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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인만큼 집념과 끈기가 강한 민족이 세계역사상 또 있을까? 한민족은 이 집념과 끈기로 지난 반만년 역사 속에 강대국의 잦은 수탈과 침공, 억압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6.25동란과 8.15해방을 거쳐 4.19와 5.16혁명 등 근대사의 획을 그을 만큼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민족은 쓰러지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았다.

이 끈기와 집착은 해외에서 미국이민사만 보아도 본격적인 이민역사 30여년 만에 미국사회도 놀랄 만큼 경제적인 자립과 안정을 가져왔다. 한민족은 또 악착같은 교육열로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우수한 2세들을 많이 배출, 각 분야별로 한국인의 우수성과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우수함은 아직까지 표면에 잘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각 유수기업이나 기관 및 미디어 등에서 소리없이 약진을 하고 있어 이들의 숨은 활동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스포츠 분야에서 골프만 해도 젊은 2세들이 세계적인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어 너무나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제 미국인들이 TV를 보기가 싫다고 할 정도로 한국인 2세들이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한민족 특유의 끈기와 집념, 악착스러움이 만들어낸 결과다. 특히 미국에 이주한 미주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유대인과 다름없이 마치 그들의 후예인양, 그들이 하던 청과, 델리, 수산, 세탁업 등 소위 3D라고 불리우는 업종의 비즈니스를 거의 석권, 경제를 주름잡았다. 이제는 미국의 주요 요소마다 한민족이 안 들어가 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경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뛰어난다 하는 한국인이 각계에서 나올 때마다 기쁨과 함께 생각되는 것은 왜 그렇게 유능한 한민족이 단합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국의 민족, 자국의 고유 풍습, 전통문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수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우수하면서도 어째서 단합하는 힘은 그렇게 미약한가.

미국속의 한인 2세들의 지금 활동하고 있는 실태를 보면서 어떤 한인은 이렇게 탄식한다. “요즘 여기서 자란 한국인 2세들은 부모들의 끈기와 집념으로 잘 자라 대부분 다 잘 되기는 하였는데, 하나같이 자신만 잘 먹고, 잘 산다는데 목적이 있어 서로 간에 융화, 유대감, 하나로 뭉치려는 단합이나 어떤 연대감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즉, 너무나 개인주의적이 되어 자기만 알지 남을 배려하거나 함께 어우러지려고 하는 마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 같이 우리도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한민족도 이 미국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선두에 서서 주름을 잡는 위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봐도 돈만 알고 때로는 무례하고 이웃이나 다른 민족을 배려하지 않고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허리를 굽히는
모래알 같은 국민성을 갖고 있어 오히려 필리핀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어디서건 쓸데없는 허세나 부리고 남에게 잘 보이려 치장하기 좋아하고 화를 잘 내며 겉치장만 신경을 쓰려하고 불친절하기 일쑤에다 교만하기 그지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남과 같이 해서 힘을 크게 하려는 생각 따위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그 좋은 끈기와 집착을 갖고도 같은 민족끼리 단합은 고사하고 오히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시하고 남이 나보다 잘되는걸 보면 배가 아파하는 그런 민족성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모래알 같은 근성이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언어도 안 되고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제도와 법규도 잘 모르는 환경에서 힘을 모아도 부족한 판에 서로 갈라지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민심이 갈라지고 정치가가 파당하고 분당하고 난리법석을 치는 한국의 경우나 동종업소가 자기만 살기 위해 출혈경쟁을 일삼고 같은 민족을 죽이려고 애쓰는 경우, 혹은 선거참여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살아가는 이곳 한인사회의 어이없는 행태 등은 모래알 근성을 갖고 있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예다. 이런 비행을 시작으로 크게는 뭉쳐서 힘을 내야 할 집단의 힘이 모이는 한인의 부족으로 아무리해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해 과연 한국인이 정말로 대단한 민족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눈만 뜨면 곳곳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 그 집념과 끈기의 결과가 단합된 힘으로 활짝 피어오를 때 우리도 유대인과 같은 강인한 집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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