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말 따로, 행동 따로

2008-07-04 (금)
크게 작게
이기영(고문)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는게 낫다”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자 탤런트가 이런 말을 홈페이지에 실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 탤런트는 이보다 몇주 전에 미국산 햄버거를 탄성을 지르며 먹는 모습을 TV에 방영했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청산가리를 먹은 셈이니 이제 죽는 날만 기다리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쇠고기 반대시위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는데 한편에서는 미국 쇠고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난 1일 미국산 쇠고기 200kg을 시범 판매한 서울의 한 정육업소에서는 첫 날에 전량이 동이 났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데모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가담하고 있다는데 햄버거를 좋아하는 연령층이 대개 이런 학생층이다. 이들이 정말로 햄버거를 안 먹었다면 서울의 햄버거 체인들은 모두 문을 닫았을텐데 그런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래 전의 일인데 본지의 보도에 불만을 가진 한 한인단체의 회원들이 본사 앞에서 불매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시간 동안 시위가 끝난 후 몇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신문사 안에 들어와서 구인광고를 내고 있었다. 시위는 불매시위를 하고 실제는 구매행동을 했던 것이다.이처럼 말 따로, 행동 따로하는 사람이 반미친북하는 사람들 중에 많이 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정부 고위층이나 사회 지도층에는 반미 인사가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자녀들은 대개 미국 유학을 시켰다. 그리고 미국에 눌러앉아 살고있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미제 물건을 애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뉴욕에 살면서 북한을 찬양하고 미국을 욕하고 다니는 어떤 사람에게 주위사람들이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왜 북한에 가서 살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가 미쳤어. 북한에 가서 굶어 죽을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미국정부의 생활보조를 받아 살아가면서 입만 열었다 하면 미국을 욕하고 북한을 찬양한다는 것이다.이렇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래서 말에는 참말이 있고 거짓말이 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거짓말 중에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단연 으뜸이다. 선거 때 내세우는 공약은 지킬 수
도 있지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당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공약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실제로는 호의호식하면서 남들 앞에서는 서민 흉내를 낸다.

어떤 학자는 정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정부의 요직에 기용되면서 태도를 180도로 바꾸어 정부의 정책을 옹호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얼마 전에도 보았고 또 앞으로 얼마든지 보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이나 반정부 운동 등 재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실은 정부의 요직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반대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순진한 사람들이 이런 인물을 호민관 쯤으로 생각한다면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쳐도 가장 언행일치의 모범이 되어야 할 종교인들조차 그러하니 이를 어쩌랴. 종교인은 예수를 닮고 부처를 닮는 사람들이다.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현세의 안락보다는 내세의 영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말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보면 현세의 일과 세속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돈과 명예, 권력, 쾌락 등을 추구하여 한껏 누리려는 종교인들이 많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종교인들도 이미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이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남의 말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막말로 사람들의 말을 일단 믿지 않는 것이 자기 방어를 위한 최선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말로 이어지는데 모든 말을 안 믿을 수도 없으니 참말과 거짓말을 가려서 듣고 처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신용사회인 미국에서는 개인의 신용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즉 크레딧 점수라는 것인데 평소의 돈거래에서 신용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점수로 매겨서 이 점수를 기준으로 신용거래를 한다. 언행이 다른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는 언행일치에 대한 크레딧 점수도 매겨야 하지 않을까. 이 점수가 많은 사람의 말은 잘 믿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지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언행일치 크레딧 점수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생활에서 거짓말로 일시적 위기를 모면하거나 어떤 이득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거짓말로 인해 신용을 잃으면 참으로 필요한 때에 참말을 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게 된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파산을 의미한다. 말을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자기의 말을 100% 믿을 수 있도록 신용을 쌓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