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위현장의 미사(예배), 무엇이 문제인가

2008-07-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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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목사)

두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시청앞 ‘광우병’ 촛불시위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끝을 내는가 싶더니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신부들의 출현으로 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저들은 시위현장에서 미사를 드리고 촛불시위를 이끌었다. 만약 경찰이 신부들의 행동을 강경하게 진압한다면 한국 경찰이 종교인을 탄압했다는 여론을 만들어 세계에 알림으로 나라를 망신시키려는 것이 저들의 의도인 듯 하다. 이는 저들이 종교인이라는 특권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부가 미사를 드리는 것은 종교인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수행하는 행위이다. 설마 저들이 교회가 세상을 호령하던 중세기로 착각하고 있거나 그 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기들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 왜 사제가 되었는지, 사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자기 자신의 죽음이다. 자기의 모든 것이 끝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간에게 죽음의 자리란 모든 욕심이 사라지고 욕정도, 집착도, 소유도 소멸되는 자리이다. 바로 이러한 죽음의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님
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예배의 자리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더욱이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위 현장은 인간의 죽음을 전제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시위 현장에 등장한 사제단은 자기 죽음을 지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역시 자기의 욕심을 버린 사람들이 아니며, 또 욕심을 버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아니다. 욕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려는 사람들이다.

촛불시위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이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정치이며, 정치의 성패는 힘에 의해 좌우된다.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치는 아귀다툼의 현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구는 송장같은 사람들과 함께 성직자의 복장을 한 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이다. 누구를 위하여 누구에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인가? 예배는 자신을 죽음 앞에 세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예배를 모독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종교인들에게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저들이 나라를 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 천주교회는 어찌하여 신부들이 예배를 모독하도록 방치하는 것인가?

성직자도 인간이고 시민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에 시비를 걸 의도는 없다. 그러나 저들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고 성직자로서 시위대를 이끌고 성직을 행사한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천주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패거리 싸움에 편을 드는 일을 했다. 이에 동조하여 더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행위를 하기 위하여 시위 현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반대든 찬성이든, 어떤 목적으로도 예배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이용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라는 껍질만 남기고 예배를 말살하는 행위이다.

진실한 예배가 사라진 인간 세상에는 빛도 없고 창조주의 말씀도 들려오지 않는다. 빛은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다. 빛은 하나님의 것이다. 암흑에 처한 인간이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일한 안식처이며 인간이 찾아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인 예배를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그 책임이 종교인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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