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랑스런 청소부의 아들

2008-06-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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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지난 6월 13일 금요일 오후 NBC 정치시사 프로그램인 ‘언론대담(Meet the Press)’의 진행자인 팀 러서트(Tim Russert)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역에 울려퍼졌다. 그의 집무실에서 다음 프로를 준비하던 중 58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미국에서 수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대담 프로는 무려 일주일에 400만명이 넘는 시청률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보다 그는 아버지의 사이에 부성애를 모닥불처럼 피운 훈훈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가 사망한 날은 마침 6월 셋째 일요일인 아버지 날을 앞둔 날이었다. 그가 2004년에 쓴 회고록인 ‘아버지 러스와 나(Big Russ and Me)’는 미국민들의 가슴을 적신 베스트 셀러이다.그 날 책방에 들렸더니 이미 그의 책은 날개돋친 듯이 팔려 동이 나고 책을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은 이미 저항과 극복의 대상이 아닌 등이 굽은 늙은 아버지에게 또는 이미 아이들 아버지가 된 아들에게 이 책을 사주고 싶으리라.


1950년에 태어난 그는 버팔로 시의 노동계층 아이리시 커뮤니티에서 아버지와 보낸 어린시절부터 이 책을 엮어나간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2차대전 제대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낮에는 청소부로 밤에는 신문 배달 트럭 운전사로 일하면서 네 아이를 모두 가톨릭 학교에 보냈다.저자는 땀과 먼지에 찌든 힘든 어깨가 축 쳐진 청소부인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로 부각시켰다.

‘아버지 러스와 나’라는 책이 출판된 후 그는 6만명의 독자들로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받았다. 그는 2005년 그의 을 읽고 답장을 보낸 독자들의 편지를 매일 읽으며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울고 웃는 시간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감동적인 글로 편집하였는데 다시 그 책은 선풍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독자들의 편지에서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서 값비싼 물건을 선물로 받은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들과 딸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은 아버지와 함께 한 작은 순간들이었으며 그들의 아버지들은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슬픈 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나의 친척 중에 10대의 두 딸을 미국에 조기 유학보내고 가족과 떨어져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며 혼자 힘겹게 살았던 의과대학 교수인 기러기 아빠의 불행한 사건도 있다.대학병원에 최첨단 장비를 불법으로 사들이는 비리로 법망의 그물에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아버지는 싸늘한 감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뒤늦게 깨달은 그의 실패는 그가 성공을 향해 줄달음질 치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순간들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있었다.
이 아버지에게 수갑을 채운 불행의 씨앗은 누가 뿌렸을까. 자식이 우선순위이고 아버지는 뒷전으로 밀려나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켜버린 오늘의 비정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 이제 시청자들은 TV 화면에서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하는 불꽃을 튀기는 듯한 푸른 눈의 앵커인 팀 러스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교황, 유명인사 등 화려한 인터뷰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그는 죽기 얼마 전 아버지를 초대하여 인터뷰하는 TV 프로를 가졌다. 그가 쓴 책의 첫머리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나의 아버지라고 말한 것을 실천한 것이다.그는 아버지가 힘든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자식을 키우며 삶의 가치를 심어주었는지 생생한 취재 인터뷰로 미국 시청자들에게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였다.그는 나이 들수록 아버지가 너무 멋있어 보인다고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그가 시청자들을 TV 화면으로 빨아들이듯이 끌어들인 강한 흡인력은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던 그의 에너지가 원동력이 아닐까?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부자의 유대감을 불꽃처럼 승화시킨 언론인이다. 그리고 그는 자랑스러운 청소부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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