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2008-06-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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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부시가 26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테러지원국 지정은 앞으로 45일 내에 미 연방의회가 반대 입법을 하지 않으면 자동 해제된다. 1988년 KAL기 폭파사건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힌 북한이 20년 만에 ‘주홍 글씨’같은 ‘테러지원국’ 면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발표한 배경에는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했고 냉각탑을 폭파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26일(한국시간)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플루토늄 사용 내역이 담긴 핵 신고서를 제출했다. 27일(한국시간)엔 냉각탑을 폭파했다. 이로 인해 부시 대통령은 미 연방의회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제외 방침을 공식 통보하여 북한에게 면죄부를 안겨주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미국을 비롯해 제재됐던 나라들과 북한과의 교역이 재개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제한돼 있던 금융거래와 금지된 이중용도의 물품수출 등이 풀리게 된다. 하지만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과 인권침해 등과 연루된 제재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북한에게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같이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하며 숨통을 트게 해 준다.


이라크 전쟁과 유가 폭등 및 달러화 약세 등으로 미국 시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 정책에 등을 돌린 이 마당에 일어난 북한의 핵 신고와 냉각탑 폭파라 인기도가 바닥을 가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겐 이번 일은 작으나마 인기 회복의 기회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부시로선 임기 중 가장 잘한 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다.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묘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출발한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남한의 이
명박 정권이 ‘광우병’ 소동으로 인해 꺼지지 않고 있는 촛불시위에 공권력을 잃어버리는 등 나라의 정체성마저도 흔들거리는 상황에 있기에 그렇다. 반면 북한과 미국은 지난 20년래 유래 없이 좋은 사이처럼 보여 누가 동맹이고 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어리둥절할 뿐이다.

미국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북한과 남한의 반응 및 미 전문가들의 진단은 어떤가.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실천적 조치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과정과 적성국무역법 적용을 종식시키는 결정을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하고 환영한다”며 모
든 제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적용해 온 것이라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된 남한의 반응은 핵 신고서 제출에 이은 냉각탑 폭파는 “북한 당국의 핵 불능화 의지를 정치적,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남은 과제는 조속히 검증체제를 확립해 북핵신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철저하게 규명해 나가는 것”이라며 한국정부의 고립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을 시사했다.

미 전문가들의 긍정적 측면의 진단은 부시 대통령의 북핵외교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부시가 2005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에게 6자회담(한·미·일·중·북·러)을 만들게 하고 북한을 끝까지 설득하여 성공한 케이스라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1만9천 쪽의 핵시설 가동일지 등을 미국에 넘겼고 이어진 핵 신고서 제출과 냉각탑 폭파로 빅딜이 성사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부정적인 축면의 진단은 북핵 신고와 냉각탑 폭파는 핵 폐기를 향한 ‘첫 걸음’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삭제될지 안 될지는 앞으로 45일 동안 행해지는 북한의 움직임과 6자회담 당사국들의 검증작업을 통해 단 하나라도 하자가 있다면 부시의 북핵
외교는 실패한 정책으로 전락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면제받음으로 일단락 된 것 같은 북핵외교는 사실상 지금 부터다. 아직도 북한은 핵무기 보유 수량과 핵무기 조립 장소와 보관 위치 등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미연방의회는 한 달 반 동안 북한의 동태와 6자회담을 예의 주시하여 부시의 성명에 반대 입법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칼은 강도에게 들리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이 된다. 그러나 의사에 손에 들리면 사람을 살리
는 활인검이 된다. 핵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에 핵이 들려지냐에 따라 평화의 핵이 될 수 있고 폭력의 핵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핵 신고를 하고 냉각탑을 폭파시키므로 인해 한반도는 핵으로부터는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남한은 광우병 소동이 변하여 정권퇴진을 외치는 어이없는 세태가 계속되고 있다. 광우병에 관련된 ‘MBC PD수첩’이 거짓말로 드러난 이 때 남한의 민심도 돌아설 때가 되었다 본다. 북의 일이 잘 풀리듯 남한도 모든 것이 잘 풀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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